수도권 한 지역에 건설 예정인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자료사진
관리비용·주거환경 입주자 불만도 값떨어질까 ‘쉬쉬’
“한번은 베란다에 이불을 널었는데 금방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오더라구요.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분당의 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윤아무개씨(31·여)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처럼 빨래한 이불을 베란다에 널었다가 망신아닌 망신을 당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음날 아파트 출입구 게시판에 “0000호 보세요. 여기가 시영아파트인 줄 아십니까?”라는 메모를 발견하고 얼굴을 붉혀야 했다.
50평대가 10억원이 넘는 이 아파트에서는 이른바 ‘아파트의 품위’가 떨어지는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다. 아파트의 품위는 곧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윤씨는 “사람들이 사는 것은 다 똑같은데 이곳은 유별난 것 같다”며 “각종 세금과 관리비 등이 여타의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지만 다들 내색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선호지역의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평당 3천만~5천만원을 호가하며 좀처럼 상승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주상복합이 처음 등장했을 때 창문을 닫은 채 고층생활을 해야 하는 게 한국인의 주거생활 습관과 어울리 않을 것이란 예측이 광범했고, 실제로 초기의 주상복합 주거는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주거공간’을 표방한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이후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치솟고, 가격도 ‘초고가’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정작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 일부는 이 ‘선망받는 주거’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겉으로 보이는 마천루의 위용은 “아무나 살지 못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만, 그곳만의 불편함이 있다. 선호와 찬사 일색이던 초고층 주거에 대한 주택시장의 반응에 ‘다른 목소리’가 조금씩 섞여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높은 가격이 형성된 주상복합 아파트의 입주자 불만은 가격하락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입주자들은 불만사항에 대해선 서로 입을 닫는다.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여름엔 주상 복합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전기요금 폭탄’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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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은 토지효용성 빼놓곤 좋은 것 없다”
에너지시민연대의 이기명 사무처장은 “주상 복합아파트는 모든 것을 에너지로 가동해야 하는 시스템이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주상복합 아파트의 경우 베란다와 같은 완충지대도 없고 창문도 여닫을 수 없는 통창이 많아 조금만 더워지기 시작해도 열기가 집안에 가득차게 된다”며 “이러한 열기를 밖으로 빼거나 식히기 위해서 에너지가 또 투입되어야 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는 가정의 전기요금만 축내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의 소비로 인한 각종 환경오염은 고스란히 사회의 몫으로 나눠가지게 된다. 도심 생태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하다. 도심의 생태환경을 연구해온 전승훈 경원대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대해 “토지 효용성 측면을 빼놓곤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전 교수는 “토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자는 입장에서 다기능 복합화의 건축 추세가 주상복합으로 나타난다”며 “하지만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하고 같은 주상복합에 사는 사람들끼리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주거행태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상복합이 에너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선진국에서는 주상복합도 친환경, 친에너지 소재를 사용해 충분히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나, 한국에선 가뜩이나 건축구조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주상복합에서 자재까지 친환경, 친에너지 소재를 쓰면 수지가 안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주상복합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문제인데, 주상복합의 문제점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고 덧붙였다.
용적률 완화 조건으로 시민개방 공터 조성 허가받고 실제로 “외부인 출입금지”
토지 효용성 측면에서 보면 주상복합은 좁은 공간에 상가·주택 등의 복합시설을 지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넓은 녹지면적을 확보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운영 실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효율을 내세워 폐쇄적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현상도 밝혀졌다. 주승용 열린우리당 의원은 24일 서울시에서 열린 건설교통위 국정감사에서 “주상복합 아파트에 딸린 녹지, 근린공원 등 공개공지는 용적률 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입주자를 위한 공원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에 따르면 현행 건축법과 서울시 조례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개공지의 조성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일정 비율 이상의 공개공지를 제공하면 해당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여주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출입금지 푯말과 울타리를 쳐 두어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토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인센티브만 받아 챙기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같은 지적에 “실태를 파악해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 “주거환경과 유지비 문제…장기 투자에도 불리” 그렇다면 주상복합의 투자 가치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그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주상복합은 오피스텔과 같아서 주거환경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관리비 및 각종 주거비 유지비를 고려할 때 장기 투자에는 불리하다”고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도 “주상복합은 현재 주거환경과 유지비 문제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며 “앞으로 공조시스템의 개발로 인해 문제가 좀 덜해지기는 하겠지만 현재 나온 상품의 경쟁력으로 장기적 투자를 하는것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외부인 출입금지 푯말 (주승용 의원실 제공)
토지 효용성 측면에서 보면 주상복합은 좁은 공간에 상가·주택 등의 복합시설을 지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넓은 녹지면적을 확보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운영 실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효율을 내세워 폐쇄적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현상도 밝혀졌다. 주승용 열린우리당 의원은 24일 서울시에서 열린 건설교통위 국정감사에서 “주상복합 아파트에 딸린 녹지, 근린공원 등 공개공지는 용적률 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입주자를 위한 공원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에 따르면 현행 건축법과 서울시 조례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개공지의 조성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일정 비율 이상의 공개공지를 제공하면 해당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여주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출입금지 푯말과 울타리를 쳐 두어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토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인센티브만 받아 챙기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같은 지적에 “실태를 파악해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 “주거환경과 유지비 문제…장기 투자에도 불리” 그렇다면 주상복합의 투자 가치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그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주상복합은 오피스텔과 같아서 주거환경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관리비 및 각종 주거비 유지비를 고려할 때 장기 투자에는 불리하다”고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도 “주상복합은 현재 주거환경과 유지비 문제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며 “앞으로 공조시스템의 개발로 인해 문제가 좀 덜해지기는 하겠지만 현재 나온 상품의 경쟁력으로 장기적 투자를 하는것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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