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우리는 모두 이민자’라고 쓰인 손팻말 등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UPI 연합뉴스
이슬람 7개국 국민들에 대한 90일간의 미국 입국 금지와 120일간 난민 수용 중지 등을 뼈대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미국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취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해, 새 행정부의 이민·난민 정책을 놓고 전세계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미국 사회가 대충돌로 치닫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 언론들은 2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반발해 워싱턴, 뉴욕,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등 미국 30개 도시에서 각각 수천명이 참여하는 항의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에선 백악관 근처에서 수천명이 모여 행진을 벌였고, 뉴욕에선 빌 드 빌라지오 뉴욕시장이 시위에 직접 참여했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선 수천명의 시위대들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란히 마주서서 찬반 집회를 벌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특별 관심 국가’로 분류한 이라크, 이란, 시리아, 예맨, 리비아, 수단, 소말리아 등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하고, 난민 입국 프로그램도 120일 동안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 연방 법원들도 이번 행정명령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뉴욕 브루클린 연방지방법원의 앤 도널리 판사는 이번 행정명령으로 구금된 7개국 국민의 본국송환을 금지하는 긴급 결정을 내렸다. 워싱턴주와 버니지아주 연방법원도 행정명령 발동 유예 결정이나 1주일간 강제추방 금지 등의 명령을 내렸다. 워싱턴과 뉴욕, 시카고 등 39개 도시는 이번 행정명령에 반발하며 이민자 보호정책을 계속 펴겠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도 28일 공동성명을 내고 반난민 행정명령 중단을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번 결정이 재앙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최악의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노벨상 수상자 12명 등 2200명 이상의 미 학자들도 이번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행정명령은 언론이 잘못 보도하는 것이지, 무슬림 금지가 아니다”며 “테러로부터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미국 내 종교·인종간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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