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온 세번째 편지]
48시간이 거의 지나갔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진다. 이스라엘은 48시간 동안 레바논 남부 주민들이 대피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걸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휴전은 없을 것이다. 미국도 유엔 안보리도 이스라엘에 그걸 요구하진 않았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버려진 것이다.
800명이 넘게 숨졌고 70만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다. 수천 채의 집이 파괴됐고 사회기반시설들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스라엘이 만족하지 않으리란 건 분명하다. 그들은 그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다. 헤즈볼라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이 운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혼란스럽다.
역설적이게도,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의 직접적 결과물이다. 그 때를 돌아보면, 헤즈볼라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땅을 되찾으려는 이슬람 시아파 농민단체였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게릴라 운동단체로 진화했다.
헤즈볼라는 성공했다. 2000년 5월 이스라엘은 레바논 점령지에서 철수했다. 헤즈볼라 구성원 숫자는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다. 레바논 정부가 시아파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자, 헤즈볼라가 거길 파고 들었다. 헤즈볼라는 병원과 학교, 그리고 다양한 사회시설들을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남자들은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임신한 여성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나중에 헤즈볼라에 가입하는 걸 꿈꾼다. 어린이들은 집에 걸려 있는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사진을 보며 자란다.
헤즈볼라 조직원과 지지자들은 수십만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올메르트 총리, 도대체 헤즈볼라를 어떻게 없애버릴 생각인가? 시아파의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을 모두 죽여버릴 셈인가? 지금까지 당신이 죽인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려보더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레바논에 있는 우리에겐 가만히 앉아 사태를 지켜보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 산 위에 있는 피난처에서, 나는 포위된 마을을 벗어나 굶주리고 목말라 하면서 길을 떠나는 난민들을 지켜볼 수 있다. 도로와 파괴된 빌딩 주변엔 수백 구의 사체가 그대로 썪어가고 있다.
일부 생필품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산 위엔 식량이 아직 부족하진 않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 오늘 아침 아이들이 음식을 먹지 않으려 했을 때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저렇게 굶주리고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은데, 내 아이들은 음식을 거부하다니….
나는 소리쳤다. “달걀을 먹어야 해. 배를 채워야 해. 이렇게 좋은 음식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야스민과 알렉산더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엄마,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야스민이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설명했다. 나는 아이들을 껴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여, 당신들이 이겼다. 당신들은 헤즈볼라에 다가갈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 속의 전쟁에선 당신들이 이겼다. 그런 마음이 이제 휴전에 동의할 수 있는 만족감을 당신들에게 주길 바란다. 림 핫다드(두 아이의 엄마이자 전직기자. <아시아네트워크>를 통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그가 피난처인 산 위에서 쓴 뒤, 이웃 젊은이에게 부탁해 택시로 베이루트까지 보내온 것을 지인이 다시 컴퓨터에 입력해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것이다.)
이스라엘이여, 당신들이 이겼다. 당신들은 헤즈볼라에 다가갈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 속의 전쟁에선 당신들이 이겼다. 그런 마음이 이제 휴전에 동의할 수 있는 만족감을 당신들에게 주길 바란다. 림 핫다드(두 아이의 엄마이자 전직기자. <아시아네트워크>를 통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그가 피난처인 산 위에서 쓴 뒤, 이웃 젊은이에게 부탁해 택시로 베이루트까지 보내온 것을 지인이 다시 컴퓨터에 입력해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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