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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우리는 지금 째깍이는 시한폭탄”

등록 2007-05-09 18:13수정 2007-05-10 11:28

프랑스 좌파 젊은이들이 8일 동부 도시 리옹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없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권우파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리옹/AFP 연합
프랑스 좌파 젊은이들이 8일 동부 도시 리옹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없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권우파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리옹/AFP 연합
[르포] 사르코지 당선에 들끓는 프랑스 이민자 사회
고질화되는 프랑스 이민자 사회 불만
“이민자 몰아낸다면 폭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한 집권 우파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의 선거포스터는 갈가리 찢겨 있었다. 반면, 떨어진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의 포스터에는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8일 오후(현지시각) 파리 교외의 빈민지역 클리시수부아. 일자리를 찾는 젊은 이민자들이 2005년 10월 대규모 소요를 시작한 곳이다. 기자가 다가가니 상점 앞에서 빈둥대던 청년들이 몰려들어 사르코지를 씹어댔다. “이민자를 악으로 취급해!” “인종차별주의자야!” “취임식 때 두고보자!” 알제리 출신 슈건 블라와(26)는 사르코지의 당선이 “끔찍한 재앙”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낡은 아파트 골목 다닥다닥 붙은 창문에는 빨래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파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천 카페의 한가로운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공원을 산책하는 백인 가족도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같이 타고 간 통역은 내리기를 망설였다. 일부 청년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북아프리카 출신이라고만 밝힌 앙투앙 기나마우(24)는 “먹고 싶으면 훔칠 수밖에 없어. 도둑질하거나 나눠주는 음식으로 사는 거지”라고 말했다.

프랑스 인구 6340만명의 약 8%(500만명)로 추정되는 무슬림 이민자와 2세들은 일자리를 원했다. 터키계 2세인 모하메드 세르도시(19)는 “프랑스 사람이면 뭐해? 얼굴 생긴 것을 보면 다 아니까, 취직이 안 돼”라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이라크 출신의 드리스 부엔(27)은 “직장이 없어 모여 있는데, 경찰은 검문하고 자꾸 집으로 들어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모두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는’는 프랑스 공화주의 정신은 찾을 수 없었다.

6일 사르코지가 당선된 뒤부터 프랑스 전국에서 무려 1천여 대의 승용차가 방화로 불탔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화는 잦아들었지만 이민 청년들의 분노는 여전했다. 알제리 출신 슈건 블라와는 “이민자를 몰아내는 법을 만들면 째깍째깍 기다리던 시한폭탄이 터질 거야. 두고 봐!”라고 말했다. 터키 출신 몬펠레 실바(29)는 “사르코지가 잘못하기만 벼르고 있어. 전쟁을 하든지, 혁명을 하든지 할 거야!”라고 소리쳤다.

사르코지 반감 분위기는 파리 시내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시 직원들은 바스티유광장 혁명기념탑에 적힌 욕설을 지우느라 바빴다. “사르코지 히틀러” 등의 글귀가 붉은색 스프레이로 내갈겨 져 있었다. 기념탑에서 리옹역까지 약 150m 거리에선 상점 19곳, 공중전화 부스 3곳, 버스 정류장 1곳의 창문이 깨져 나무 판자를 덧대놓고 있었다. 유리창이 깨진 한 미용실 문앞에는 “폭력사태로 한동안 문을 닫는다”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민자들의 분노는 사르코지의 당선을 도왔다. 경기침체 속에서 사회불안을 우려하는 백인 중하류층이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이번 선거에서 이들의 표는 강력한 치안·이민정책을 내건 사르코지 쪽으로 고스란히 몰렸다. 존재로 볼 때 좌파성향이어야 할 서민층이 극우파 지지로 돌아서는 조짐은 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났다. 이번 선거에선 그 폭이 더 넓어졌음이 확인됐다.

파리정치대학 프랑스정치연구소(CEVIPOF) 에티엔 슈베이구스 교수는 “1978년 설문조사를 한 뒤 처음으로 경제적 이슈보다 치안·이민 문제가 후보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런 이슈에서 유권자들이 우경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르몽드>는 8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여섯 가지 기대’의 두번째로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는 교외지역의 사회통합을 꼽았다. 르몽드는 “25살 이하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인종 차별, 프랑스 평균의 갑절이 넘는 실업률, 공공서비스 부족, 경찰의 단속 등은 민감한 도시지역에서 폭발 요소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클리시수부아의 모습은 이민 문제를 안고 있는 프랑스의 불안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파리/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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