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유슈비츠 정문.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문구가 써있다.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다섯째 날.
여행의 마지막날이다. 오늘은 크라코우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아우슈비츠 (폴란드어로 오슈비엥침)를 방문하기로 했다. 오전에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조금 덥다 싶을 정도의 햇살이 날 맞이한다.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방문하는 날이어서 그랬는지, 햇살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진 상태로 여정을 시작했다.
입구를 지나 쓸쓸한 흙길을 걸었다. 발걸음이 굉장히 무거웠다.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였기에 여기 오기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자라고 다짐했건만, 막상 접한 이 곳은 내 평정심을 흔들어버린다. 줄줄이 서있는 저 나무들 조차도 쓸쓸하게 느껴졌던 한 낮의 풍경.
아우슈비츠의 각 동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 각 나라별로 유대인 및 집시, 정치범 희생자를 기리는 시설물을 시청각 자료를 이용하여 매우 잘 꾸며 놓았다. 아래 보이는 첫번째 사진 이탈리아 계 유대인, 그 다음 헝가리안 유대인, 세번째 폴란드 유대인 전시실. 마지막 사진은 네덜란드계 유대인 전시실인데, 벽면에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다. 저렇게 한쪽벽에 빼곡히 이름을 써서 그들의 영혼을 기리고 있다. 엄청난 숫자이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유대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아픈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자신들이 과거 당했던대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팔레스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고, 역사적으로 억압받았던 사실을 이용해 전 세계를 상대로 동정표를 구하고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든든한 백업 미국이 버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당한 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 뿐아니라 슬라브 민족들 (나치가 이들을 단종시키기 위해 성기 절단 실험까지 감행했다고), 집시들, 정치인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수도 상당수 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 유대인 희생자의 수가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 졌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러나,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 아이, 저 또래 수만명이 무자비로 학살 당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이성적으로 정리한 저 위의 글들이 다 변명일 뿐이다.
이런 끔찍한 역사가 일어난지는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이번 아우슈비츠 방문은 어떻게 인간이 이토록 잔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잘못된 지도자와 정치, 전쟁이 되돌릴 수 없는 슬픔을 남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유대인들, 기타 희생당한 사람들, 그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에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던바, 수십번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으로 무릎을 꿇은 독일에게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말로 대신한 유대인들. 그들에 비해 아직도 뻔뻔스런 얼굴을 하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과 매주 수요일 집회에 나서는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주름살이 겹쳐졌다. 우리나라도 731부대, 마루타, 강제징용, 성노예등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는 이런 기념관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 다신 그들이 군국주의의 꿈을 꾸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유린의 범죄자 임에도 애매모호한 경제발전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처벌되지 않고 있는 독재정권의 앞잡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희생자들을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현재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는데 적절한 요금을 책정하여 모은돈은 전세계 인권을 위한 단체, 인권운동에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 날의 오후 일정은 바벨성을 가는 것이었는데, 아우슈비츠를 둘러보고 너무 깊숙히 가라앉아버린 내가 감당이 되지 않아 그만 숙소로 돌아와버렸다. 저녁시간 광장에 다시 나가 여행을 정리하면서도 그 여파는 사라지지 않았으니, 인간이 만든 잔혹함에 크기에 새삼 놀랄 따름이다.
저녁식사 후 숙소에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발코니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노라니 시끌벅적한 골목길과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5일간의 동유럽 여행에서 내가 만난 건물과 유적과 사람들 생각을 하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서유럽과는 또 다른 멋이 있는 이곳의 공기와 기운을 담아가고 싶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된 알파벳 B는 유대인들의 저항의 표시이다.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말라버린 나무들이 쓸쓸함을 더한다.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모서리 곳곳에 세워놓은 팻말. STOP! 당시에는 저 철책에 고압선을 흘려보냈다고.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각 동마다 설치해놓은 나라별 전시실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유대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아픈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자신들이 과거 당했던대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팔레스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고, 역사적으로 억압받았던 사실을 이용해 전 세계를 상대로 동정표를 구하고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든든한 백업 미국이 버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당한 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 뿐아니라 슬라브 민족들 (나치가 이들을 단종시키기 위해 성기 절단 실험까지 감행했다고), 집시들, 정치인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수도 상당수 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 유대인 희생자의 수가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 졌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런 수만개의 웃음이 이곳에서 사라졌다.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엄청난 숫자로 쌓여있는 희생자들의 신발. ⓒ 한겨레 블로그 spor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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