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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예숙의 마음의 집] 감정의 자유

등록 2016-09-04 17:20수정 2016-09-04 19:01

김민예숙
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 중에는 공감, 감성지능, 감정노동 등 감정 관련 용어들이 있다. 한때는 이성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졌던 감정이라는 영역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행복해지는 데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 타인과의 소통에서 공감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 상황에 맞게 감정을 느끼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 감정을 사용하는 노동이 있다는 것 등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감정이 중요해진 이유는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관심이 행복의 조건보다는 행복감으로 이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소유를 증명하는 문서보다는 충만한 가슴과 진심으로 웃는 웃음이 더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 불행의 경우를 보아도 감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데, 많은 강력 사건이 손상된 자존심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촉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감정의 비중이 커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감정을 존중하려면 우선 감정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감정은 늘 변화하는데, 일어나고 사라져가는 감정의 특성을 허용하는 것이 감정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우에 감정을 존중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감정과 행동의 경계이다. 내가 느끼는 애착의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과, 애착의 대상에게 내 감정을 강요하며 타인의 감정을 침범하는 행동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우에는 타인의 신체의 자유를 존중하고 생각의 자유를 존중하듯이, 타인의 감정의 자유 또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신체와 생각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비해 타인의 감정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이 좀 더 직접적이어서 그런지, 타인에게 감정의 자유를 주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에게 나와 다른 공간에 있을 자유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자유를 주기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감정을 느낄 자유’를 주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상대나 애인의 변심을 수용하지 못하여 괴롭히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감정의 자유를 제한당할 수 있다. 한 여성 장애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노래를 잘하는 그녀는 장애인가요제에 출전하려고 했는데 주최 쪽에서 그녀가 선곡한 슬픈 사랑의 노래는 안 되고 밝고 씩씩한 노래로 출전하라고 했다고 한다. 장애가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 있기에 슬픈 감정까지 청중이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잠정적인)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인 그녀에게 감정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무력한 위치를 통감하며 감정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출전의 자유를 포기했다. 이 일은 사회에서 무력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감정의 자유를 누리는 데에서도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 확장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감정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이 시대를 잘 살기 위해서는 감정의 자유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내가 자유롭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배워야 하지만, 타인에게 그들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자유를 허용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타인의 감정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감정이어서 나를 아프게 하거나, 타인의 감정이 이질적이어서 나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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