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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예숙의 마음의 집]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등록 2017-05-21 19:35수정 2017-05-21 20:15

김민예숙
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오래전에 어떤 남자 대학생은 동성 친구의 연애를 돕고자 했다. 친구가 자신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을 강간이라도 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간을 위해 ‘돼지 발정제’를 구해주는 강간모의에 동참했다. 친구는 강간에는 실패했으나, 그 여성을 모텔로 끌고 가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남자가 약물을 몰래 먹이며 강간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성에게 알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 여성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으며 그 공포는 얼마나 오래갔겠는가!

필자의 성폭력 상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친구는 결혼까지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친구는 강간은 나쁜 일이지만,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며, 나아가 결혼을 하여 강간을 책임지면 된다고 합리화했을 수 있다. 강간을 하고서 결혼하여 책임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끔찍한 일인데, 실제로 발생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 남자 대학생은 미수로 끝난 ‘강간모의 동참’ 이야기를 나중에 자서전에 썼고, 그 후에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을 받자, 오래전의 일이고 자서전에서 ‘뒤늦게지만 잘못된 일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으니 국민에게 용서해달라고 했다.

용서의 요청을 받는 국민의 한 사람인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용서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첫째 이유는 강간모의죄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잘못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해야 한다. 그런데 후보는 피해 당사자인 그 여성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과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용서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후보는 새내기 대학생 시절 미팅에서, 상대 여성이 출신 고등학교 이름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일을 겪었다. 그때의 상처로 다시는 미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녀가 나온 대학의 여대생들을 향해 “○○대학 계집애가 싫다”는 모욕적인 말을 했다. 올 2월 강연장에서는 그녀의 친구가 나타나 지금 그 여성을 만나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내가 그 ○○년을 만나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욕설을 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게 용서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여성은 자서전을 쓰면서 공공연하게 ‘뒤늦게지만 무례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철이 들면서 거절을 할 때라도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여성에 대해 언급할 때 ‘철없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호의적으로 해석하며 ‘이제는 용서한다’고 웃으며 말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오래전 일에 대해 결코 잊지 못함과 용서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신에게의 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주듯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 행한 무례함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국민에게 요청하는 것은 자체모순적이고 뻔뻔스러운 일이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며 강간모의죄를 용서받으려 하고, 또 자신에게 행한 무례함을 또 다른 무례함으로 갚는 후보를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면모를 갖춘 분들이 지도자로 나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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