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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예숙의 마음의 집]진보와 여성이슈

등록 2017-02-05 16:07수정 2017-02-05 18:57

김민예숙
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진보와 보수에 대한 담론을 많이 듣게 되는 요즘이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보수의 기본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가족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이어서 대체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가치이다. 진보의 기본은 기존 질서의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하자는 것인데, 개선을 바라는 사람은 다양하기에 진보가 주장하는 이슈는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 수용으로부터 생태환경 보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남성 육아휴직까지. 이슈들은 다양하더라도, 진보가 근거로 하는 것은 자유, 평등, 인권 같은 보편적인 가치들이다. 다양성으로 인해 주장하는 사람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그 내용이 낯선 것이기 쉽다.

여성을 위해 여성의 지위 또는 여성에 대한 관념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보의 입장을 가진 나는 여성주의 상담 교육에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육 중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며 법과 제도의 변화 그리고 가부장적 의식의 변화 요구에는 동의하지만, 기존의 이성애 가치를 고수하며 성소수자 이슈를 거부하는 교육생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자신과 관련된 이슈에서는 변화를 바라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이슈에서는 변화에 무관심하다면 이중적이 됨을 지적했다. 내가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하여 요구하는 변화에는 지지를 바라면서, 타인이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하여 변화를 요구할 때 외면한다면 일관적인 적용이 아니다.

타인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이슈에서 진보적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다른 이슈에서 진보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진보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하는 쪽에서 상대가 진보가 아니라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특히 여성과 관련된 이슈에서 이런 일이 생기곤 한다. 예를 들어 민족이나 노동 관련 이슈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남성들이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일 때 가부장성을 지적하면, 그 태도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진보를 분열시킨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성폭력이 있어 그것을 드러내면 진보를 불명예스럽게 만든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로 지지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당사자가 느끼는 절실함에 공감하지 못한다 해도, 그 이유가 타당할 때 그것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것이 진보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 요청되는 태도라 하겠다. 따라서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끼리 최소한의 지침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변화를 원하는 입장에 대해 공감을 못해도 기존 가치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기, 기존 가치를 유지하는 보수라는 지적을 받을 때 멈추어 서서 경청하고 타당하면 인정하기, 그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무엇인지 배우고 최소한 그것은 안 하기 등. 그러면 자신에게 절실한 이슈에서만 진보이면서, 여성 이슈 등 자신에게 절실하지 않은 이슈에서는 보수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연대가 필요하고 지지집단이 필수적이다. 내게 절박한 이슈에서 지지를 바란다면, 나도 타인의 절박한 이슈에 지지를 보내야 서로 도우며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침을 지킨다면 사회의 개선을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 좀더 튼튼한 연대가 생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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