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00년 전쯤 만든 이론인 정신분석의 유명한 개념 원자아(이드), 자아(에고), 초자아(슈퍼에고), 무의식 등은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원자아는 욕망의 충족인 쾌락을 추구하고, 자아는 원자아의 욕망 충족을 위해 그것에 제한을 가하는 환경인 현실과 타협하고, 초자아는 이상에 비추어 원자아의 충동과 자아의 행위를 판단한다. 이처럼 성격을 구성하는 원자아, 자아, 초자아의 뿌리는 원자아의 욕망이고 생물학적 본능인데, 대표적인 본능은 성욕과 공격욕이다. 프로이트는 욕망을 추구하는 원자아를 지배하는 원리를 쾌락원리, 조절기능을 하는 자아를 지배하는 원리를 현실원리라 불렀다. 그런데 인간 존재의 뿌리인 본능에 관심을 가진 프로이트도 현실원리를 중요시했다. 왜냐하면 한 개인에게는 원자아의 욕망 충족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개인은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 없이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식욕을 충족시키고 싶을 때, 식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농사를 지어 식욕을 충족시키려고 해도, 농기구나 비료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원래 목표인 원자아가 원하는 쾌락을 차단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의 대가를 받기 바라는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몰래 가져간다면 충족은커녕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원하는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도 현실인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원리가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원자아가 활보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위해서는 법을 쉽게 어기고, 지위에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심지어 방해가 되는 인물을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협박하거나, 제거한다. 쾌락원리의 지배를 지나치게 받는 것이다. 게다가 비행이 드러났을 때 자아는 현실원리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의 근거가 제시되었을 때 자신을 방어하려고 명백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인신공격”하거나 음해하려 하고, 심지어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며 “거짓말”을 통해 “대중의 감정을 선동”한다. 하물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사과하고 처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초자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이런 모습을 보일까? 현실원리를 따르려면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 물질을 탐하게 하는 소비사회에서 자아의 현실적인 감각과 초자아의 윤리적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인가? 어차피 원자아의 욕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것만 주장하는 쾌락원리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각자 욕망 충족을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현실원리를 자아가 유지할 때 소통과 협상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현 시국처럼 욕망이 충돌하는 때일수록 모든 사회구성원이 사실을 기반으로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해야 사회가 평화적으로 운영될 테고, 미래의 세대에게 사회가 문제해결을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건전한 자아 형성을 위해 논리적 사고를 가르치는 나는 쾌락원리를 과하게 따르다 범하는 오류의 예들이 아니라 현실원리를 지키는 문제해결의 예들을 보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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