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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예숙의 마음의 집] 무력해지는 능력

등록 2017-03-19 16:51수정 2017-03-19 19:00

김민예숙
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2013년 2월 취임식부터 대통령직에 수반된 권력을 소유하게 된 제18대 대통령은, 2017년 3월 파면을 당해 그 권력을 잃고 무력한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국민은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한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며, 청와대를 떠날 때 무력한 위치로의 전환을 수용하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자택으로 돌아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는다”는 의외의 말을 전했다. 자신이 무력해진 현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국민의 80%가 탄핵 인용을 찬성하고 90%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수용을 찬성하는데, 전 대통령은 자신의 무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권력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무력해져야 할 때 무력함을 수용하는 것도 능력임을 보여주는 사태이다. 우리는 권력을 가질 때 잘 사용하고, 무력해질 때 수용하고 새 힘을 찾아야 한다. 헌재 재판관들은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을 가졌는데, 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보여 지지를 받았다. 국정농단에 협조하여 구속된 사람들 중에는 무력해지는 능력을 보인 사람도 있다. 무력을 수용하지 않은 사람은 분노와 억울함 등의 감정에 빠져 있고, 수용한 사람은 성찰하고 독서하며 새 힘을 얻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성심리학자 밀러는 ‘무력해질 줄 알기’가 여성의 강점이라고 했다. 심리는 타고나는 기질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다. 여성을 무력한 종속집단으로 만든 가부장제라는 부정적인 조건 속에 살아야 했기에, 여성은 ‘무력해질 줄 알기’라는 긍정적인 심리를 발달시켰다고 한다.(그 외에도 아이를 돌보는 성역할을 수행하노라 타인과 협력하고, 타인의 발전에 참여하기를 기뻐하는 심리를 발달시켰다.) 밀러는 여성이 종속집단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긍정적인 심리는 유지하고 나아가 지배집단으로 살아온 남성들도 그것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 무력함과 힘은 반대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무력함과 힘의 연결은 가능하다. “바닥을 쳐야 올라올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객관적으로 무력할 때 무력함을 심리적으로 온전하게 수용하면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할 때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 내담자가 문제가 있음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함을 인정할 때, 그 백지 같은 무력의 상태에서만 새 힘을 찾게 되고 해결의 새로운 방향을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무력해질 줄 알기’는 긍정적인 면을 가진 심리이다.

현재 무력해지지 못하는 전 대통령은 여성이다. 그녀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4년간 그 직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18년간 대통령의 딸로서 오랫동안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이 사실이 보여주는 재미있는 그리고 중요한 점은 ‘무력해질 줄 알기’가 여성심리로 다루어지는 진짜 이유이다. 대부분의 여성심리는 생물학을 근거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서 발달한 것임을 보여준다.

인생에는 권력의 때도 무력의 때도 있는데, 어떤 경우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잘 살 수 있다. 무력해지는 능력을 발달시키려면 권력의 위치뿐만 아니라 무력의 위치에도 처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권력의 위치에만 있게 하는 특권은 개인에게도, 민주사회에도 해롭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늘 권력의 위치에만 있거나 무력의 위치에만 있는 일이 없을 때 민주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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