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처음엔 정말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춤을 춘다는 줄 알았다. 스쳐 가는 수많은 타임라인 중 조금 시선을 끌었지만, 클릭은 하지 않고 넘어갔다. ‘요즘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춤을 추는 영상이 올라오네’ 정도의 생각만 했다. 출근길 무심코 연 실시간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수 지코의 ‘아무노래’와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노래챌린지 #anysongchallenge. 아차 싶어 검색을 해보니 이미 인터넷 세상에선 놀이판이 한창이다. 가수 지코가 발표한 신곡 안무를 셀카 모드로 촬영해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 올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이미 이효리, 청하, 송민호 같은 인기 연예인들은 물론, 배구선수 김연경과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댄스 챌린지에 동참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놀라웠다.
유행이 번져나가는 방법은 늘 새롭다. 유행도 새로운데, 그 방법마저 항상 새로우니 가끔 무서울 지경이다. 예상하지 못한 유행이 지나갈 때마다 ‘세상이 나만 빼고 장난치는 게 아닐까’라는 농담을 친구에게 던진다. 동지애를 느낀 우리는 서로에게 이게 왜 유행인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원인을 찾으면 이미 멀어진 거라고 하던데. 애틋해지는 우정에 감사할 따름이다.
음악과 유행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모든 음악이 유행을 따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한순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결이 같다. 또 그런 면에서 산업의 발전과도 매번 걸음을 같이한다. 턴테이블, 워크맨, 시디(CD)플레이어, 엠피(MP)3로 이어지는 중심에는 음악이 있었고, 최근 발전하는 플랫폼 산업은 음악과 만나 시너지 돌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음악은 더 이상 하나의 기계 안에 하나의 격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플랫폼 속에서 음악은 본성질인 ‘놀이 문화’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이 판을 깔고, 그 위에 음악이 펼쳐지는 격이다.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온라인 탑골공원’도 그렇다. 옛 가요 프로그램을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재방송을 하자 하나둘씩 젊은층이 모여들었고, 과거를 회상하며 서로 노는 댓글들이 새로운 문화가 되어 주목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과거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당시 유행 음악을 회상하는 것도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고 놀던 문화에 기반을 뒀다.
다시 ‘아무노래’로 돌아와보자. 사실 ‘#아무노래챌린지'는 신곡이 공개되기 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과 협업 계획하에 진행된 프로젝트라고 한다. 가수 지코는 이번 챌린지를 위해 틱톡 계정을 새롭게 개설했고, 자신의 음악을 다양하고 매력 있게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젊은 세대가 음악을 소비하고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유쾌하게 활용한 홍보수단이었던 것이다. 연예인과 팬의 경계가 허물어진 온라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영상을 만들었고, 공유했고, 즐거워했다.
최근 발생한 음원 사재기 논란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명암이 함께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플랫폼은 판을 까는 데 그쳐야 하는데, 누군가 나타나 판을 흐트러뜨리고 동시에 소비자들의 눈까지 가렸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소비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불쾌감을 조장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다.
둘의 차이는 바로 자발성에 있다. 유행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을 기반으로 새로운 유행을 창출해내는 것과, 한순간 보여지는 인기 차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플랫폼 시장은 전쟁터다. 그들은 더 놀기 좋은 플랫폼을 소비자에게 만들어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말은 나팔바지가 다시 유행하던 때에나 통하던 말이라 할 만큼 플랫폼 전쟁 속에선 살벌하게 승자만이 남는다. 이토록 치열한 전쟁 속에서 아무리 누군가 판을 흐트러뜨리고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자 해도 결말은 정해져 있다. 유행을 만드는 주체는 소비하고 즐기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소비자들이 될 것이다. 문화를 담지 못한 유행은 유행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