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온다. 마치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어떤 유행이나 트렌드를 머리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말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접했을 때 옆 사람에게 이게 최근에 유행이라는 보충 설명을 듣거나, 요즘 아이들의 휴대폰에 필수적으로 깔려 있다는 베스트 애플리케이션과 내 휴대전화 화면이 조금은 달랐을 때 그렇다. 그럴 때마다 이 유행을 알게 된 나와 알지 못하던 때의 내가 순간적으로 뻘쭘하게 마주한다. ‘왜’를 고민하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어떤 사건이나 아이템, 유행어가 그 경험을 부여하였는지는 각자 다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격세지감의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유행의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지면서,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 깊이 공감하지 못한 경험들은 계속해서 축적된다. 처음에는 한두번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이 어느 순간 그들과 나는 세대가 다르다고 선을 긋게 만든다. 그은 선에는 어떤 부분이 서로 달랐는지에 대한 해석이 붙는다. 그렇게 세대론의 물꼬가 트이게 되는 것이다.
유행에 있어 습득의 책임은 없다. 개인이 아닌 기업의 미션에 있어서만 종종 책임이 되는 사례는 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치의 경영진이 35살 이하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직원들로만 구성된 일명 ‘그림자 위원회’를 만들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도입해 구치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국내 최대 검색 포털인 네이버 역시 신입 직원 10여명으로 구성된 ‘스테이션 제로’라는 그룹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으로 지속적인 의견을 들어왔다. 그들의 심리가 기업에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다면 유행은 반드시 파헤쳐야 할 핵심 전략이 되곤 한다.
다만 개인에게도 유행에 있어 포용의 의무는 있다. 다름을 존중하는 일에서는 머리의 이해와 마음의 공감이 필수적이다. 세대 간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흐름을 두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 없이 공존할 수 있게 된다. 꼭 동일한 선상에 서로가 존재해야 하거나 반드시 서로의 손뼉이 맞아야만 진정한 화합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잘못된 공동체 의식이 적용되는 순간 서로 불편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유행이 꼭 서로 맞닿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유튜브와 같은 콘텐츠 플랫폼이 모든 세대한테 환영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각 개인에게 공간을 부여하고, 그 사람이 선호하는 콘텐츠로만 공간 속을 가득 채워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흥미를 즐길 수 있었다. 때론 나와 비슷한 흥미를 가진 사람의 것을 추천받는 선에서만 공간을 침해받았는데, 기술로써 그것은 침해보다는 환영이 됐다.
관심사가 동일한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손뼉의 시너지는 배가 된다. 트렌디한 음악을 좋아하는 제트(Z)세대는 자신의 음악 취향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댓글을 통해 소통하고, 인생의 다양한 주제와 자기 계발을 이야기하는 중년 세대는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방식으로 발전하여 연결을 이어가고 있다. 플랫폼은 각자의 그룹 안에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자리하고 있다. 내가 제일 흥미 있어 하는 것이 적어도 내 공간 안에서는 가장 트렌디한 것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개취’(개인의 취향)의 세계가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로트의 인기는 부모님 세대를 댓글 창으로 이끌었고, 애정과 충성도 높은 댓글들을 보며 자녀 세대들은 우리가 자주 쓰는 ‘주접 댓글’과 비슷하다고 귀여워하며 점차 동조하였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개인의 취향은 수많은 그룹으로 분포하다가 결국에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어느 한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이 하나의 지점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행은 이제 어디에서든 올 수 있다. 굳이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취향 존중의 연장선상에서 모두 마주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