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밀레니얼과 Z사이] 댓글을 시청합니다 / 권도연

등록 2020-06-03 14:19수정 2020-06-04 13:55

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내가 ‘깡’을 처음 만난 날은 언제였을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어느 날 유튜브 추천 동영상에서 마주한 뮤직비디오 ‘깡’에 홀린 듯 들어갔다가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한참 웃다 나온 기억이 있다.

온통 ‘깡’판이다. 올해 초부터 역주행 조짐을 보였던 가수 비의 음원 ‘깡’이 발매 3년 만에 전성기를 맞았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서부터 시작된 이 은밀한 유행은 이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화력을 자랑하고 있다. 너도나도 ‘깡’ 패러디를 찍어 올리고, ‘깡’ 감성에 맞는 댓글을 작성하고, ‘깡’의 유행 현상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는 과자 ‘깡’ 시리즈가 이벤트를 진행할 정도다. 과한 퍼포먼스와 다소 부담스러운 가사를 담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최근에는 그 무엇보다 트렌디한 유행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분명 혹평에서 시작된 관심인데, 이제는 호평이 되어 대중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진흙 속 진주처럼 파묻혀 있다가 받은 재평가라고 하기엔 음악 자체에 대한 평이 달라진 측면은 없다. ‘깡’ 신드롬은 음원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대다수의 사람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영상에 달린 댓글들에서부터 새로운 유행이 시작됐다. 나만 아는 곳인 줄 알았는데 모두가 ‘나만 아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런 댓글 공간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콘텐츠를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직접 유행을 만들어냈다. 비 역시 “요즘 예능보다 제 댓글 읽는 게 훨씬 재밌어요”라고 쿨하게 유행을 인정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식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대중은 이제 사랑할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하고, 제작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행에 모두 재미가 들려버렸다. 이제 더는 완제품의 개념으로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어쩌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기 요인으로 지목받았던 것과 같게 대중은 참여 지향적인 그룹으로 성질을 완전히 달리했다. 콘텐츠 자체의 재미보다는 이제 ‘우리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판을 얼마나 제공했느냐’가 유행의 기점이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유행이 가수 비를 예능 출연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기성미디어 역시 뉴미디어로 직접 판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는 기존 인기 방송인들의 ‘부캐’(부캐릭터) 전략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에서만 활동하기보다는 조금 색다른 캐릭터를 만들어서 대중의 판으로 직접 뛰어드는 그림이다. 데뷔 18년차 개그맨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로, 데뷔 30년차 개그맨 유재석은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이미 오랜 인기를 쌓은 연예인들이 가면 하나로 새 인기를 얻게 된 점 역시 참여와 소통이 요소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의 젊은 대중들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연예인이었을 사람들이다. 대중은 늘 연예인이었던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닌, 새 공간에서 새 캐릭터로 다가온 인물에 환호를 보내준 것이다. 둘째 이모 김다비가 지상파 음악 방송에 나갔을 때도, 신인 가수 유산슬이 아침 방송에서 멋쩍게 노래를 부를 때도 새로운 세대들은 스스로 부캐의 활동 영역을 넓혀준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최근 유튜브는 시청 화면에서 댓글창의 위치를 변경하는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기존엔 영상 아래에 몇 개의 추천 동영상을 지나친 후 댓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영상 바로 아래에서 댓글을 볼 수 있도록 위치를 변경했다. 사용자들의 시청 행태가 영상만 집중하기보다 댓글을 또 하나의 콘텐츠로 동시 소비하는 경향이 커진 것을 인지한 시도로 보인다. 처음엔 불편함을 호소하던 이들도 금세 적응하여 댓글을 같이 볼 수 있어 편리하다는 의견이다.

이제 댓글도 단순히 의견 작성이 아닌 시청의 콘텐츠로서 자리 잡고 있다. 일부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에서만 보이던 즐거움에서 출발해, 살아 움직이는 댓글의 중요성이 모든 콘텐츠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다음번 ‘댓글 맛집'은 어디가 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생각난 김에 오늘도 ‘깡'을, 아니 ‘깡' 댓글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