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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밀레니얼과 Z사이] 호모 비디오스 / 권도연

등록 2020-04-22 18:28수정 2020-04-23 12:59

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생각해보면 당연한 논리가 어느 순간 나 혼자의 유레카가 되는 경우들이 가끔 있다. 부모님과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봤던 물건이 갑자기 유치원 행사의 산타클로스 선물로 등장한다거나, 스쳐 가듯 지나간 모든 말과 마음 같은 것들과 다시 마주했을 때 등등. 당연함의 지수가 높을수록 ‘아니, 그걸 여태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단 말이야? 나도 참’이라고 되뇌게 되는 순간이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몰랐다. 새 학기 모든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반 배치 결과가 알고 보면 순수한 무작위 추첨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해서 코웃음이 날 지경이다. 일 년 농사의 시작은 모내기부터라는데, 바닥을 고르게 다지고 균일하게 파종을 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일 테다. 선생님들은 매해 모든 학생이 적절한 자리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실컷 고민하고 나서는 교실 앞 게시판에 반 배치 결과를 깜짝 놀라게 걸어둔 것이었다.

새롭게 만난 같은 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눌 수 없는 요즘, 선생님이 된 친구는 새로 담임을 맡게 된 반 학생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지낸다고 했다. 갑자기 “안녕, 새 담임 선생님이야”라며 전화로 건네는 첫인사가 얼마나 쑥스러웠는지 모른다는 친구의 말에 ‘그보다 더 놀랄 만한 반 배치 결과 알림도 없겠다’ 싶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사회에서 마주한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선생님에게도 학생에게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교육은 언제나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단순히 멀티미디어 장비들이 얼마나 더 많이 현장에 배치돼 있는가의 문제는 아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큰다는 아이들의 성장 속도만큼 시대의 변화마저 흡수하며 쑥쑥 커가는 아이들에게 발맞춰야 하니 당연한 이야기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익을 목적으로 교육을 해낸다는 백년대계가 세워진 뒤부터 교육에서 변화는 의무보다는 숙명에 가까웠다.

온라인 개학과 개강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혼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곳은 주로 교단 쪽이었다. 다급하게 대안으로 삼은 실시간 화상 강의는 되레 실시간 교내 커뮤니티에서 ‘지금 ○○ 수업 소리 저만 안 들리나요?’와 같은 혼란을 낳았고, 온라인 수업 중 화면에 부적절한 영상이 노출되는 사건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동영상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다리 몇개만 건너면 전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법칙을 증명하듯 동영상 촬영 편집이 가능한 지인을 수소문하거나, 수많은 조교의 컴퓨터에 녹화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했다.

기다려준 쪽은 학생이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지자 학생들은 쉽게 비대면 강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혼란스러운 스승에게 마이크 켜는 버튼을 채팅으로 알려주거나, 화면 전환을 알려줬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개학은 혼란보다는 익숙에 가까웠다. 학교가 끝나면 인강으로 일타강사의 수업을 듣는 일에서부터 동영상으로 필요한 정보 검색까지 해결하는, 가히 호모 비디오스(영상 보는 인간)라 할 만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스승이 잘 적응하실 수 있을지를 서로 걱정했다.

오프라인에서 수강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걸까. 이미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에서는 유명한 교수들이 진행하는 인기 강의를 무료 온라인 교육과정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개 수업을 뜻하는 ‘MOOC’가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운영 경험이 꽤 쌓인 프로그램들은 이제 학교와 교실의 개념을 바꿔 학습의 커뮤니티 자체를 형성해가고 있다. 강의를 수강하고, 동기 수강생들과 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조교나 교수와 피드백을 교류하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왜 우리는 꼭 만나서 배워야 하는 걸까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 상상을 해보곤 한다. 교육도 분명 코로나 이전과 이후 사이의 변곡점을 맞았다. 종이에 연필로 글쓰기보다 스크린패드에 전자펜슬로 글쓰기를 더 먼저 배우게 될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의 교육은 무엇일까. 학습지 선생님이 오면 자연스러운 척 학습지가 없어졌다고 하던 것처럼, 공부하기 싫을 때 갑자기 와이파이가 이상하다고 대답할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의 대안을 관찰하고 찾아나서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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