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도중 박재완 대표비서실장한테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기자회견 관련 메모를 건네받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자신을 키워준 당을…이인제 악몽” 우려
중도 개혁 빠져 ‘보수 대 보수’ 구도 부담
홍준표 “줄서기 팽배”…소장파 일부 반성
중도 개혁 빠져 ‘보수 대 보수’ 구도 부담
홍준표 “줄서기 팽배”…소장파 일부 반성
한나라당 표정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끝내 탈당을 선언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예견된 탈당”, “명분 없는 탈당”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1997년 ‘이인제 탈당’으로 대선 실패를 경험한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강재섭 대표는 손 전 지사의 탈당 기자회견 뒤 “애석하다. 탈당의 이유가 무엇이든지, 탈당 선언을 철회하고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정권교체 한길에 힘을 합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나경원 대변인이 전했다.
그러나 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배신행위”라며 손 전 지사를 맹비난했다. 의원들은 특히 손 전 지사가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을 ‘군정 잔당과 개발독재 잔재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정당’으로 지칭한 것에 격분했다. 3선의 권철현 의원은 “손 전 지사를 국회의원 만들어주고 경기지사로 활약하며 ‘큰 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서게 해준 건 한나라당과 당원이었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자신을 키워준 당과 당원을 이렇게까지 모욕하느냐”고 비판했다.
초선인 최구식 의원은 “말은 웅장하지만, 지지율이 뜨지 않아 승산이 없으니 당을 떠난 것이다. 이인제보다 더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 고참 보좌관은 “한나라당 지지자들 생각엔 대선 승리밖에 없다. 당원들과 당 지도부, 대선 주자들은 모두 ‘손학규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반응이 격하게 나오는 건, 손 전 지사 탈당이 한나라당의 집권 가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손 전 지사의 탈당 자체가 주는 상징적 타격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내부 분열상을 드러내고, ‘포용력 없는 정당’으로 인식될 수 있다. 더구나 ‘대세론’을 형성해온 한나라당으로서, 판이 흔들리는 것 자체가 달가울 리 없다.
특히 보수 이미지가 더 짙어지는 게 한나라당으로선 큰 부담이다. 당내 경선도 이명박-박근혜의 ‘보수 대 보수’ 구도가 된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개혁 이미지의) 손 전 지사가 있어서 한나라당도 다양한 이념적 공간이 있다는 인상을 줬지만, 그가 빠짐으로써 이념적 공간이 협소하다는 인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성조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은 “(중도개혁 성향의) 인사들을 주요 당직에 영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태희 의원은 “국민들 시각에서 정책·노선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경선도 완충지대 없는 이명박-박근혜 양강 대결로, 훨씬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손 전 지사의 탈당 원인을 제공한 이는, ‘시베리아’ 발언으로 그의 마음에 못을 박은 이 전 시장”이라며 손 전 지사 탈당을 이 전 시장 공격의 명분으로 삼았다. 한편에서는 손 전 지사 탈당에 대한 ‘자성론’도 나왔다. 홍준표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유력 주자들의 ‘줄세우기’ 행태를 비판해온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에 줄서기 문화가 너무 팽배하다. 경선 문화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다른 주자 캠프에 몸담고 있는 한 소장파 의원은 개혁 성향 의원들이 손 전 지사를 돕지 않은 데 대해 “일정 부분 반성한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박근혜 “이해 안돼”…이명박 “안타깝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일 당내 경쟁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 소식에 모두 깊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손 전 지사의 탈당 논리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등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 반면, 이 전 시장은 ‘쓴소리’를 피해 묘한 대조를 보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경북 김천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 소식을 접한 뒤 “끝까지 함께 가셨으면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손 전 지사가 탈당 선언을 하면서 한나라당을 비판한 것을 두고선 “경선 룰 때문에 나가시면서 갑자기 안 하던 말씀을 하시니까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또 “한나라당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점들이 있는 것 같다. 지금 한나라당은 무척 많이 변했다. 애당초 합법적으로 공평한 절차를 거쳐 당원들이 만든 경선 룰을 바꾸려 한 것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여러 차례 손 전 지사와 전화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도 이날 경기 용인에서 기자들과 만나 “손 전 지사는 오랫동안 한나라당에서 함께 일했고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해 왔다.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당을 떠나 아쉽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그러나 저희 당은 힘을 모아 정권 교체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손 전 지사를 설득하기 위한 만남을 시도했던 이 전 시장은 ‘시베리아 발언’이 손 전 지사에게 탈당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을 의식한 탓인지 손 전 지사에 대한 쓴소리는 자제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범여권 반응
반사이익 들뜨고 통합논의 꼬이고 “대형 사건이다. 손학규 전 지사가 제3세력을 형성하면, 범개혁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영향력은 메가톤급이 될 것이다.”(우상호 열린우리당 의원) “손 전 지사 결단을 환영한다. 통합신당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정치권의 새판을 모색하자.”(이강래 통합신당모임 통합신당추진위원장) 지리멸렬했던 범여권은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반색했다. 지지부진한 여권의 통합신당 작업에 속도를 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여권은 손 전 지사 탈당이 여권과 한나라당 사이의 이념·정책적 차별성을 확인시켜 주는 기제로 작용해, ‘반한나라당’ 세력을 묶어내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모임, 민주당 등은 공식 논평에서 “한나라당은 군정 잔당들과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라는 손 전 지사의 말에 한목소리로 맞장구쳤다. 대선 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천정배 의원도 “한나라당이 낡은 정당임이 증명됐다”고 입을 모았다. 각 당은 그러면서도 손 전 지사 탈당이 통합 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사정이 복잡하다. 당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또다른 강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지도부가 추진하는 대통합신당 작업의 방향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청한 당 관계자는 “국면이 복잡하게 됐다. 정세균 의장의 통합추진 작업이 별 의미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소통합은 초점에서 멀어질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지만 대통합의 큰 틀에 맞추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민노당 “철새의 도박” 민주노동당은 19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선언과 관련해,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국민은 ‘철새의 도박’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손 전 지사의 행보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외에는 어떤 합리적 기준도 발견할 수 없다”며 “개인적 유불리에 의한 판단이 새로운 정치질서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정치권은 이합집산 과정을 겪을 것”이라며 “인물에 따라 이리저리 짜깁기되는 한국 정치사의 불행이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 전 지사가 경기지사 시절 외자유치 경험담을 쓴 저서 <손학규와 찍새, 딱새들>을 언급하며 “이제 찍새와 딱새에 철새를 하나 덧붙여야 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연합뉴스
당내 경선도 완충지대 없는 이명박-박근혜 양강 대결로, 훨씬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손 전 지사의 탈당 원인을 제공한 이는, ‘시베리아’ 발언으로 그의 마음에 못을 박은 이 전 시장”이라며 손 전 지사 탈당을 이 전 시장 공격의 명분으로 삼았다. 한편에서는 손 전 지사 탈당에 대한 ‘자성론’도 나왔다. 홍준표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유력 주자들의 ‘줄세우기’ 행태를 비판해온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에 줄서기 문화가 너무 팽배하다. 경선 문화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다른 주자 캠프에 몸담고 있는 한 소장파 의원은 개혁 성향 의원들이 손 전 지사를 돕지 않은 데 대해 “일정 부분 반성한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박근혜 “이해 안돼”…이명박 “안타깝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일 당내 경쟁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 소식에 모두 깊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손 전 지사의 탈당 논리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등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 반면, 이 전 시장은 ‘쓴소리’를 피해 묘한 대조를 보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경북 김천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 소식을 접한 뒤 “끝까지 함께 가셨으면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손 전 지사가 탈당 선언을 하면서 한나라당을 비판한 것을 두고선 “경선 룰 때문에 나가시면서 갑자기 안 하던 말씀을 하시니까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또 “한나라당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점들이 있는 것 같다. 지금 한나라당은 무척 많이 변했다. 애당초 합법적으로 공평한 절차를 거쳐 당원들이 만든 경선 룰을 바꾸려 한 것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여러 차례 손 전 지사와 전화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도 이날 경기 용인에서 기자들과 만나 “손 전 지사는 오랫동안 한나라당에서 함께 일했고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해 왔다.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당을 떠나 아쉽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그러나 저희 당은 힘을 모아 정권 교체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손 전 지사를 설득하기 위한 만남을 시도했던 이 전 시장은 ‘시베리아 발언’이 손 전 지사에게 탈당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을 의식한 탓인지 손 전 지사에 대한 쓴소리는 자제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범여권 반응
반사이익 들뜨고 통합논의 꼬이고 “대형 사건이다. 손학규 전 지사가 제3세력을 형성하면, 범개혁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영향력은 메가톤급이 될 것이다.”(우상호 열린우리당 의원) “손 전 지사 결단을 환영한다. 통합신당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정치권의 새판을 모색하자.”(이강래 통합신당모임 통합신당추진위원장) 지리멸렬했던 범여권은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반색했다. 지지부진한 여권의 통합신당 작업에 속도를 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여권은 손 전 지사 탈당이 여권과 한나라당 사이의 이념·정책적 차별성을 확인시켜 주는 기제로 작용해, ‘반한나라당’ 세력을 묶어내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모임, 민주당 등은 공식 논평에서 “한나라당은 군정 잔당들과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라는 손 전 지사의 말에 한목소리로 맞장구쳤다. 대선 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천정배 의원도 “한나라당이 낡은 정당임이 증명됐다”고 입을 모았다. 각 당은 그러면서도 손 전 지사 탈당이 통합 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사정이 복잡하다. 당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또다른 강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지도부가 추진하는 대통합신당 작업의 방향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청한 당 관계자는 “국면이 복잡하게 됐다. 정세균 의장의 통합추진 작업이 별 의미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소통합은 초점에서 멀어질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지만 대통합의 큰 틀에 맞추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민노당 “철새의 도박” 민주노동당은 19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선언과 관련해,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국민은 ‘철새의 도박’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손 전 지사의 행보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외에는 어떤 합리적 기준도 발견할 수 없다”며 “개인적 유불리에 의한 판단이 새로운 정치질서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정치권은 이합집산 과정을 겪을 것”이라며 “인물에 따라 이리저리 짜깁기되는 한국 정치사의 불행이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 전 지사가 경기지사 시절 외자유치 경험담을 쓴 저서 <손학규와 찍새, 딱새들>을 언급하며 “이제 찍새와 딱새에 철새를 하나 덧붙여야 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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