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열고 각 당이 개헌을 당론으로 결정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유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싸늘한 여론에 “협상하겠다” 조건부 수용
한미FTA 타결이후 정치상황도 고려한듯
‘FTA특수’ 가운데 발의 강행 무리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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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11일 국회 6개 정파의 원내대표 합의를 조건부 수용한 것은 일단 ‘개헌 유보’의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각 당이 다음 국회에서의 개헌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책임있게 약속할 경우 개헌 내용과 추진 일정에 대해 대화하고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임기중 개헌안 발의를 당장 접겠다는 뜻은 아니다.
청와대 쪽에선 “각 정당이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이 포함된 개헌 추진을 약속할 경우, 개헌 발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달 8일 제안을 내세우며, 6개 정파의 요청을 이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재인 실장이 6개 정파 원내대표의 합의를 “그동안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개헌에 대한 정치적 대화를 제안한 바 있는데, 이번 원내대표단 합의는 늦었지만 그에 대한 응답이거나 새로운 제안으로 보인다”고 평가한 것은 청와대의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6개 정파 원내대표의 합의를 차기 국회 개헌을 위한 정치적 협상을 시작하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협상 결과에 따라 노 대통령의 개헌 발의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비서실장도 정치권과의 협상이 깨진다면,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6개 정파 원내대표의 제안을 조건부로 수용한 것 자체를 ‘명분있는 퇴각’을 위한 길닦이로 보는 시각도 많다.
노 대통령은 1월9일 개헌 제안 특별담화 이후 개헌의 역사성과 당위성을 정력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4년 연임제 개헌엔 찬성하지만 노 대통령 임기내 개헌엔 반대한다’는 국민 정서를 뚫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4차례나 개헌 발의 시기를 연기하면서 여론 변화를 기대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냉담한 상황이다. 이미 개헌 추진의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노 대통령으로선 명예롭게 칼을 칼집에 넣을 기회를 기다려 왔다고 볼 수도 있다.
6개 정파 원내대표의 합의는 이런 상황에 처한 노 대통령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준 측면이 있다. 문재인 실장이 “대화를 하는 마당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진 않겠다”라며 노 대통령이 ‘개헌 발의’ 유보 조건으로 제시한 ‘차기 대통령의 임기 1년 단축, 대선 주자의 대국민 약속’도 협상 대상이라 밝힌 것은 청와대의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협상에서 명분만 살려주면 퇴각할 수 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청와대의 변화된 태도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이후 정치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 타결 뒤 지지율 상승 등 ‘자유무역협정 특수’를 누리는 노 대통령은 야당 반발이 확실한 개헌안 발의를 강행해 정치권과 심각한 갈등 관계를 형성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개헌안이 부결되면 임기말 권력 누수가 본격화하고,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민 지지와 국회 비준까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상황을 청와대로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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