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오전(한국시각) 뉴욕 서턴플레이스 유엔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왼쪽)을 만나 함께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대통령 “북핵 일괄타결” 의미
‘되돌릴수 없는 핵폐기’ 주문…근본주의적 방식 접근
전문가 “협상까진 긴 세월…남북관계 공전 가능성 커”
‘되돌릴수 없는 핵폐기’ 주문…근본주의적 방식 접근
전문가 “협상까진 긴 세월…남북관계 공전 가능성 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북한 비핵화 방안으로 제시한 ‘일괄타결’(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은 언뜻 보면 미국 정부의 ‘포괄적 패키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청와대 쪽은 ‘일괄타결’에 담긴 의미를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이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포괄적 패키지’는 주로 북한에 주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일괄타결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 폐기 등 비핵화 조처와 대북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을 맞바꾸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라면 일괄타결 방안은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언급했던 ‘포괄적 패키지’와 내용적으로 비슷한 측면이 있다. 미국 정부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경제·에너지 지원 등을 제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를 ‘주는 쪽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규정한 데서 엿볼 수 있듯, 단순히 작명 차이 이상으로 미국 방안에 견제구를 던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 정부는 일괄타결의 의미에 대해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하도록 하는 개념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협상을 한 뒤 이행을 하다가 중간에 끝나거나 되돌아간 기존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고, 불가역적 조처를 먼저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마바 행정부도 최종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까지 한꺼번에 일정표를 짜자는 의미에서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되돌릴 수 없는 조처에 대해 “예를 들면 사용후 핵연료봉의 국외 반출, 플루토늄의 폐기 등”이라고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문제는 핵물질인 플루토늄이 담긴 사용후 핵연료봉의 국외 반출이나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의 폐기 등은 기존 핵무기의 폐기와 함께 비핵화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이 대통령의 구상은 강경하고도 근본주의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개념적으로는 일괄타결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행동 대 행동의 방식으로 순서와 절차를 밟아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 대통령의 발언은 실질적으로는 선 핵 폐기론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북-미, 북-중 관계의 해빙 조짐 속에서도 경색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해법이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을 하게 되더라도 북핵문제의 해결이 주된 의제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당국간 대화가 성사되면 핵문제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핵문제 협상과 해결에는 긴 세월이 걸린다”며 “남북관계가 오랫동안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연합뉴스>, <교도통신>과 한 공동인터뷰에서 일본 민주당 정부에 대북 압박 공조를 주문한 것이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8일 “북한의 목표는 적화통일이고 그런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라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사실 등에 비춰볼 때 정부의 강경한 대북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에서 이 대통령의 ‘일괄타결’ 제안은 북-미, 북-중 간 대화의 진전 조짐에 대한 ‘방어용 딴죽걸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까닭이다. 이용인, 뉴욕/황준범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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