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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다시 불붙은 ‘동북공정’…한국정부 대응은 적절했나

등록 2006-09-08 19:22수정 2006-09-08 23:08

중국 랴오닝성 펑청시의 고구려 산성인 봉황산성의 지난 8월 초 공사현장. 랴오닝성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함께 일반인 공개를 위해 이 산성의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사 안내판에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고 적혀 있다. 펑청/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중국 랴오닝성 펑청시의 고구려 산성인 봉황산성의 지난 8월 초 공사현장. 랴오닝성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함께 일반인 공개를 위해 이 산성의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사 안내판에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고 적혀 있다. 펑청/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중국 추가왜곡 논란속 ‘백두산 채화’ 로 재점화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등 한국의 고대사를 통째로 중국 역사책 안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동북공정’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2002년 이후 계속돼온 동북공정 연구의 결과물이 최근 책자로 발간된 게 계기였다. 여기에 중국이 백두산에서 겨울올림픽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천지에서 중국 내 체육행사의 성화 채화 행사를 벌이면서 한국 내의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일부에선 중국이 새삼스레 한국사와 관련한 대규모 왜곡에 나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주장과 실제를 갈라 가면서 동북공정을 둘러싼 논란을 점검해 본다.

문 : 동북공정, 왜 지금 다시 문제인가?
답 : 중국, 연구항목 안바꿔…KBS 보도뒤 증폭

‘동북공정’은 2002년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이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 사회과학원과 공동으로 출범시킨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상 연구 공정’의 준말이다. 동북공정 사무소의 자료를 보면, 중국이 동북공정에 착수한 것은 “중국 동북지역 정세의 변화가 중국의 변경지대에 끼칠 영향”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의 붕괴 또는 한반도 통일정권의 출현 이후 ‘만주 수복’ 등 영토분쟁 발생에 대비하려는 연구인 셈이다. 이를 위해 동북 지역에 존재했던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은 모두 중국사에 속한다는 논리가 필요했다. 지난 2004년 이런 움직임과 논리가 공개되면서 한국에서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방송>(KBS)의 보도로 다시 불붙은 동북공정 보도는 새로운 진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터진 것이다. 이들 보도는 변강사지연구중심의 홈페이지 ‘동북공정’ 항목에 올라 있는 연구내용이 2005년 9월 새롭게 실린 것으로 보고, 중국이 다시 한국사 왜곡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매체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한수 이북을 모두 중국땅으로 삼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했던 정권을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당위 때문에 생긴 문제이지만, 중국 당국이 한반도 북부까지 넘본다고 판단할 다른 현실적인 근거는 없다.

변강사지연구중심에 오른 27개 연구항목 가운데 공개된 18개에 대한 소개는 2004년 6월에 이미 공개된 것으로, 2005년 9월 홈페이지를 수정하면서 올린 날짜가 2005년으로 바뀌었을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도 “한국방송 보도로 촉발된 동북공정 문제는 실체가 없다”며, “변강사지연구중심의 홈페이지 내용이 그 뒤 새로 추가된 게 없기 때문에 2004년 8월 한-중 구두 합의를 위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토끼가 뛰자 산짐승들이 영문도 모르고 뛴 격이다.


문: 한국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는가?
답 : 지방정부 집요한 왜곡에 대처 미진

동북공정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한국의 보수층은 “미국에 대해선 ‘자주’를 주장하는 노무현 정권이 중국에 대해선 할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중국 때리기’의 좋은 소재인 동북공정을 통해 에둘러 한국정부의 대미 정책을 비판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동북공정은 한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해결하긴 어려운 문제다. 동북공정은 중국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국책연구임에 틀림없지만, 학술연구의 외피를 쓰고 있어 한국정부 차원에서 중단이나 폐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떻든 학술연구이지 국가의 ‘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연구기관이 고조선·고구려·부여·발해에 대해 연구하는 걸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의 역사 왜곡, 교과서와 공식 출판물을 통한 역사 왜곡 등의 예방과 수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노력이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다. 우선 고구려 관련 서술을 아예 없앤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도 문제는 있다. 가령 고대 아시아에 대해 설명하면서 중국과 일본만 크게 소개하고 한국이 아예 빠진 건 균형잡힌 역사 서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적절한 지적과 요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국 지방정부 차원에서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미진하다. 지방정부가 벌이는 고구려사 왜곡이나 유물 개·보수 작업은 모두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중앙부처의 예산 지원과 감독·비준을 거친다는 점에서 중국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역사 왜곡을 묵인 또는 조장한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부는 고구려사 왜곡 의도가 없는데 지방정부가 하는 일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변명이 통한다는 건 한국정부의 외교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문 : 중국은 2년 전 합의를 위반했는가?
답 : 중앙에선 성의…동북 3성은 시정 안해

한-중 두 나라는 2004년 8월24일 동북공정 논란과 관련해, △이 문제를 정치문제화하지 않고 △중국이 중앙·지방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한국 쪽의 관심’을 반영하고 필요한 조처를 취하며 △학술 교류를 통해 해결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차관급 양해사항에 합의했다.

그 뒤 중국 정부는 적어도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신화통신사 홈페이지와 인민교육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랐던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중국 외교부 한국 소개글 가운데 고대사 관련 부분을 모두 삭제하는 등 고구려사와 관련한 왜곡 내용은 바로 고쳤다. 또 2005년 개편해 2006년부터 실험 사용할 예정이던 중국 세계사 교과서에서 고구려 관련 내용을 아예 싣지 않거나 거의 서술하지 않았다.

문제는 지방정부다. △지린성 지안시 지안박물관 머릿돌 △랴오닝성 흘본성 사적진열관 게시판 △용담산성 안내간판 △랴오닝성 펑청시 봉황산성 안내간판 등에 새겨진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글귀 등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지방정부에 시정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지방정부 나름의 연구와 판단에 따른 결정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 시점에서 중국이 특별히 2004년 8월의 합의 사항을 어겼다고 지적할 만한 내용은 없다. 중국 쪽의 한 관계자는 8일, “중국 정부는 나름대로 성의를 가지고 2004년 8월의 구두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한국 언론이 별다른 새로운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선동적’인 보도를 해 매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 : 앞으로 쟁점은 무엇인가?
답 : ‘교과서 반영’ 확정땐 한-중 위기상황

중국의 동북공정은 2007년 최종 결과물을 내놓을 예정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 동북공정의 역사관을 중국의 역사책에 반영하는 일이다. 동북공정을 추진해 온 주체들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 중국 동북지역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들이 중국사에 속한다는 주장을 교과서를 통해 중국 국민에게 교육해야 동북공정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면 한-중 관계는 다시 한번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한 역사 연구자는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한국에서는 중국으로 쳐들어가자는 얘기까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 완성 이후 두 나라 관계를 크게 악화시킬 이런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중국 정부가 이런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한국 정부와 학계가 적절한 예방과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한국사)는 8일 “동북아의 평화를 해치는 역사분쟁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중국과 일본을 핑계삼아 온 나라와 사회를 극우적, 보수적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중·일 세 나라는 역사 문제를 가지고 관념적인 자존심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해 윈-윈 게임을 벌여야 한다”며 “동북공정 앞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맹목적인 대결의식이 앞서는 현실은 크게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04년의 합의는 일종의 ‘외교적 봉합’이었다”며 “한-일 역사공동위원회와 같은 상시적인 역사대화 채널을 만들어 이 문제가 다시 외교마찰 대상으로 불거지지 않도록 일상적으로 서로 조율하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강태호 안수찬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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