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여당의진로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정당 민주주의 원칙에 합당한 것인지를 놓고 판이하게 다른 시각을 보이며 연일 충돌하는 양상이다.
해외순방 중인 노 대통령은 4일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게재된 글을 통해 당의 진로 및 방향과 관련, "이 문제는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 여러분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며 "당헌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통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게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나 여당내 대선후보군, 차기 총선에 사활을 건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의 진로가 좌지우지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꼬집으며 전당대회를 통한 의사결정을 주장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저도 당원으로서 당의 진로와 방향,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노선에 대해 당 지도부 및 당원들과 책임있게 토론하고자 한다"며 자신도 발언권을 갖고 정계개편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힐 것임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글이 지난 3일 출국전에 작성됐다는 청와대측의 설명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은 지난 1일 김근태 의장이 당 확대간부회의 석상에서 노 대통령이 ‘평당원’ 신분임을 상기시키면서 ‘당이 결론을 내면 당원을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셈이다.
김 의장은 당시 "당이 나갈 길은 당이 정할 것"이라며 "당이 토론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면 당원은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개입을 차단했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의 글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언급을 삼갔지만, 이날 아침 열렸던 비상대책위 회의를 통해 "당의 힘은 당내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당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당내 민주주의의 핵심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며 강조했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노 대통령과 김 의장 모두 ‘토론’을 강조했지만, 노 대통령은 `당 지도부와 대선후보군, 의원들만으로 당의 진로가 결정돼서는 안된다'는 대목에 방점을 찍은 반면 김 의장은 `당내 토론은 자유롭게 하되 결론이 내려지면 행동 통일을 해야 하고 당원은 따라야 한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어 내용상 뚜렷하게 대비된다.
양자의 차이는 노 대통령 글에 대한 지도부와 친노파 의원의 반응과 해석을 보면 한층 더 분명해진다.
비대위원인 이석현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원의 의사를 묻겠다는 대통령의 얘기는 언뜻 들으면 근사하지만, 수 만명이 모인 전당대회에서 무슨 토론이 되겠느냐"며 "우선 의원들, 그리고 중앙당, 이어 전국의 모든 당원들이 단계적으로 토론하고 줄거리를 잡아나가야 하고, 그것을 놓고 전대를 열어 당원들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물어야 한다"며 노 대통령 주장을 반박했다.
이 위원은 또 "당원으로서 의사를 말씀하신 것이니까 참고하겠다"고 노 대통령의 글이 ‘평당원’의 자격에서 나온 것임을 상기시켰다.
반면 친노직계인 김태년 의원은 "대통령의 글은 지극히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언급"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다수의 생각이 통합신당만이 살 길인양 몰아가고 있는데 우리당 지도부 눈에는 의원들만 보이고 선거때 고생한 당원들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며 지도부를 비판했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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