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대표(오른쪽 네번째)와 다른 비상대책위원들이 4일 오후 국회에서 총사퇴를 발표한 뒤 “국민과 당원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민주노동당 위기 원인과 전망
민주노동당의 분당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지난 3일 임시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을 부결시킴으로써, 당내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창당 이후 계속 쌓여온 두 정파 간의 갈등은 대선 참패 뒤 강경 평등파가 자주파를 ‘종북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폭발했다. 하지만 정작 대선 참패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하지도 못한 채 ‘남 탓’만 하다가 자멸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주파 ‘온정적 대북관’ 조율 소통부재
강경 평등파, ‘종북주의’ 공격 불씨 키워
대선 참패 뒤에도 성찰없는 ‘네탓’ 공방
“이참에 진보세력 재편 고민해야” 주장도
■ ‘종북주의’ 논란에서 허우적=조승수 전 의원 등 강경 평등파는 자주파가 지난 대선 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우고 북한의 핵실험을 옹호했다며 ‘종북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으로 오히려 당 전체가 ‘종북주의 당’으로 전락하는 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종북주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당을 종북주의라는 언어 프레임에 가둬버렸다. 이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이미 떠난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자주파 일부의 대북관이 북한에 대한 지나친 동정과 공감으로 객관성과 대중성을 잃은 측면이 있지만, 당내 토론과 대화를 통해 민주노동당의 대북관을 조율하지 못한 것은 평등파의 소통능력에도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소수파인 평등파가 이렇게 반발하는 데는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당의 정책 결정과 조직 운영 등을 좌지우지해온 자주파의 패권주의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노선 차이에 대해 대화하기보다는 상대를 완전히 눌러버리는 방식으로 당이 운영됐고, 비리 등 노선과 상관없는 문제가 생겨도 정파간 이념 차원으로 접근하다 보니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갈등만 커지는 상황이 되풀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대선 참패 평가는 어디에?=두 정파는 대선 참패 책임론 성격의 ‘종북주의’ 논란에 빠져, 정작 대선 참패에 대한 본질적인 평가는 내팽개쳐 버렸다. “국민들의 생존권이나 경제적 요구에 대한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능력한 운동권 정당’으로 국민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비대위 혁신안의 대선 평가는 당대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정영태 교수는 “8년 전 창당과 4년 전 원내 진출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진보 정당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구축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대안 세력으로서의 전망을 보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낡은 틀에만 안주하고,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얘기다. 이는 특정 정파의 문제라기보다 당 전체의 정책 능력과 지도력의 문제인데, 이에 대한 성찰 없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던 게 현실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일심회 사건 등을 놓고) 당대회에서 이뤄졌던 논쟁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정당인데, 국민을 향한 정치에서 벗어나 있다. 당내 정파들이 국민 지지를 누가 더 받을 것이냐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데, 과거 운동권식 내부 투쟁을 하니 결국 양쪽 모두 패배자가 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 리더십과 외부 환경=심상정 비대위는 양쪽 강경파의 문제점을 기계적이고 절충적으로 비판하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샀다. 자주파의 정서적 반발이 예상되는 일심회 사건 관련자 제명 문제는 내부적으로 그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일심회 문제를 공개적으로 정면에 내걸면서 자주파의 우회로를 막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전반적으로 약화하면서 민주노동당이 바깥의 쓴소리에 귀 기울일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도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신자유주의 세력에 맞서는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질서 재편을 깊이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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