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폭력 벗어났지만…낯선 한국 희망은 멀다
[나눔꽃 캠페인] 이혼 뒤 살 길 막막한 동남아인 여성
10년간 고통 시달리다 작년 이혼
임시거처 보호시설도 곧 비워줘야
할머니에 구박받은 딸은 ‘대인기피’ 10살 재선(가명·여)이는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시집온 엄마와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다. 엄마는 1996년 한국에서 결혼해 오빠와 재선이를 낳고 10년 넘게 살았지만, 잦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지난해 4월 이혼했다. 엄마는 위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대신, 재선이에 대한 친권을 가졌다. 낯선 땅에서 겪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이혼은 했지만, 막상 두 모녀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다행히 강원여성쉼터와 춘천의 한 교회 목사 부부가 도와 지금까지 엄마와 딸은 잠자리 걱정만은 덜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1년3개월 동안 지내던 이곳도 다음달 초까지는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 도움을 주고 있는 목사 부부와 복지단체 관계자들은 “재선이 엄마가 결혼 직후부터 남편의 폭력과 구박 속에 새벽부터 밤까지 수십개의 비닐하우스를 오가며 일년 내내 고된 농삿일만 했다”고 전했다. 비닐하우스 위에 올라가 서툰 일을 하다 떨어지는 바람에 앞니가 많이 부러져 지금은 틀니를 끼고 있다. 재선이 엄마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 밭일을 하다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며 남편에게 처음 매를 맞았다고 했다. 결혼 초기부터 고통이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재선이를 예뻐했지만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할머니는 재선이와 오빠를 눈에 띄게 차별해 엄마 마음을 더욱 병들게 했다. 이름 대신 늘 ‘계집애’라 불리며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살았던 탓인지 “재선이는 누군가 다정하게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어찌 해야 할지 잘 몰라 할 정도”라고 월드비전 강원지부 곽지은 사회복지사는 전했다. 재선이는 날이 갈수록 또래 친구는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의사표현 능력도 잃어갔다. 재선이가 방과후 시간을 보내는 아동보호센터 쪽은 ‘장기간의 집중 심리치료가 아주 절실한 상태’라고 전한다. 엄마는 이런 고통이 겹치자 결국 지난해 1월 춘천의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을 찾았고, 그곳에서 이혼과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도움을 받은 뒤 생계를 위해 도배사 일을 3개월 동안 배우고서 이혼했다. 도배사 일은 수입이 정식 기술자의 절반도 안 됐고 키 작은 엄마한테는 천장 도배 같은 일은 너무 힘들었다. 지금 엄마는 반찬공장에 다닌다. 수입은 한 달 80만원 정도. 쉼터를 나와 모녀가 살 만한 작은 월세방 얻기도 어렵다. 월세와 공과금 등을 빼고 나면 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심리치료까지 받아야 할 재선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희망은 품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급한 대로 지금 재선이네를 보호하는 목사 부부가 보증금 200만원에 월 15만원짜리 임시 거처를 알선했지만 얼마 뒤엔 비워 줘야 한다. 잦은 구타와 고된 노동으로 생긴 엄마의 병도 모녀한테 닥친 어려움이다. 재선이의 미술·심리치료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지, 재선이 엄마는 오늘도 낯선 땅에서 마주한 산더미 같은 숙제를 안고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곽지은 사회복지사는 “지금 재선이네한테 가장 시급한 주거 문제에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다”라며 “모녀가 안정적인 거처에서 함께 살며 재선이도 늦기 전에 정상적 의사소통을 위한 심리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월드비전 (02)784-2004. 춘천/글 김종화 기자 kimjh@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임시거처 보호시설도 곧 비워줘야
할머니에 구박받은 딸은 ‘대인기피’ 10살 재선(가명·여)이는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시집온 엄마와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다. 엄마는 1996년 한국에서 결혼해 오빠와 재선이를 낳고 10년 넘게 살았지만, 잦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지난해 4월 이혼했다. 엄마는 위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대신, 재선이에 대한 친권을 가졌다. 낯선 땅에서 겪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이혼은 했지만, 막상 두 모녀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다행히 강원여성쉼터와 춘천의 한 교회 목사 부부가 도와 지금까지 엄마와 딸은 잠자리 걱정만은 덜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1년3개월 동안 지내던 이곳도 다음달 초까지는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 도움을 주고 있는 목사 부부와 복지단체 관계자들은 “재선이 엄마가 결혼 직후부터 남편의 폭력과 구박 속에 새벽부터 밤까지 수십개의 비닐하우스를 오가며 일년 내내 고된 농삿일만 했다”고 전했다. 비닐하우스 위에 올라가 서툰 일을 하다 떨어지는 바람에 앞니가 많이 부러져 지금은 틀니를 끼고 있다. 재선이 엄마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 밭일을 하다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며 남편에게 처음 매를 맞았다고 했다. 결혼 초기부터 고통이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재선이를 예뻐했지만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할머니는 재선이와 오빠를 눈에 띄게 차별해 엄마 마음을 더욱 병들게 했다. 이름 대신 늘 ‘계집애’라 불리며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살았던 탓인지 “재선이는 누군가 다정하게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어찌 해야 할지 잘 몰라 할 정도”라고 월드비전 강원지부 곽지은 사회복지사는 전했다. 재선이는 날이 갈수록 또래 친구는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의사표현 능력도 잃어갔다. 재선이가 방과후 시간을 보내는 아동보호센터 쪽은 ‘장기간의 집중 심리치료가 아주 절실한 상태’라고 전한다. 엄마는 이런 고통이 겹치자 결국 지난해 1월 춘천의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을 찾았고, 그곳에서 이혼과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도움을 받은 뒤 생계를 위해 도배사 일을 3개월 동안 배우고서 이혼했다. 도배사 일은 수입이 정식 기술자의 절반도 안 됐고 키 작은 엄마한테는 천장 도배 같은 일은 너무 힘들었다. 지금 엄마는 반찬공장에 다닌다. 수입은 한 달 80만원 정도. 쉼터를 나와 모녀가 살 만한 작은 월세방 얻기도 어렵다. 월세와 공과금 등을 빼고 나면 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심리치료까지 받아야 할 재선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희망은 품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급한 대로 지금 재선이네를 보호하는 목사 부부가 보증금 200만원에 월 15만원짜리 임시 거처를 알선했지만 얼마 뒤엔 비워 줘야 한다. 잦은 구타와 고된 노동으로 생긴 엄마의 병도 모녀한테 닥친 어려움이다. 재선이의 미술·심리치료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지, 재선이 엄마는 오늘도 낯선 땅에서 마주한 산더미 같은 숙제를 안고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곽지은 사회복지사는 “지금 재선이네한테 가장 시급한 주거 문제에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다”라며 “모녀가 안정적인 거처에서 함께 살며 재선이도 늦기 전에 정상적 의사소통을 위한 심리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월드비전 (02)784-2004. 춘천/글 김종화 기자 kimjh@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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