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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주 기원’ 찾는 비극적 아름다움

등록 2006-07-02 17:38수정 2006-07-03 14:44

‘하늘’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탐구의 보물 창고 역할을 해왔다. 우주기원적 사유는 무한의 전체를 인식하려는 유한한 인간이 지닌 태생적 ‘비극의 조건’일지 모른다.   한겨레 자료사진
‘하늘’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탐구의 보물 창고 역할을 해왔다. 우주기원적 사유는 무한의 전체를 인식하려는 유한한 인간이 지닌 태생적 ‘비극의 조건’일지 모른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

스티븐 와인버그 ‘최초의 3분’

최근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생전에 과학자들에게 우주를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우주의 시작 그 자체는 신의 작업이므로 탐구하지 말라고 당부한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시작을 밝혀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스티븐 와인버그 역시 과학적 우주생성론을 다룬 <최초의 3분>(1977년)에서 “초기우주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그는 “창세기의 문제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하고 반문한다.

1970년대까지 미시적 물리학인 소립자이론의 연구에 집중했던 와인버그가 우주론을 쓰게 된 데에는 물론 학술적인 이유도 있다. 이론상으로 “소립자이론의 주제들과 우주론의 주제들이 만나는 것도 우주의 시초, 특히 처음 100분의 1초 동안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완벽을 위해 전체 즉 우주를 ‘한눈에 보고자’ 한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모델을 만든다
이는 비극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아주 드문 일 중의 하나이다”

<최초의 3분>은 당시 우주 탄생의 ‘표준모델’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빅뱅 이론’에 “우주의 내용물에 대한 훨씬 더 상세한 처방을 보충”해서 대중들을 위한 교양과학서로서 쓰여진 것이지만, 사실 전문가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소립자물리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였던 와인버그가 이 책을 씀으로써 그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던 초기우주론이 입자물리학의 연구 주제로 부상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사상사적 관점에서 보면, 빅뱅의 가설에 기초한 초기우주론은 고대철학의 전통과 현대과학의 특성이 과학적 성과 안에서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고대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아르케’ 곧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아르케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말의 일반적 쓰임새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적 의미로도 그랬다. 즉 ‘세상의 시작’을 아는 것은 ‘세상의 원리’를 아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어떤 것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그것의 핵심을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현대과학은 ‘시작의 가설’을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해 보여야만 과학적 성과로서 인정을 받는다. 와인버그도 빅뱅 이론이 표준모델로 받아들여진 것은 “철학적인 유행이나 천체물리학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우주배경복사의 실측이라는 “실험 데이터의 압력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좀 더 심층으로 들어가서, 앞서 언급한 ‘시작’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왜 철학과 과학은 이 세상과 인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우주 모델을 정립하려고 노력해 왔는지 묻게 된다. 그것은 ‘전체를 한 눈에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탐구자로서 인간은 되도록 완벽한 이해를 위해 ‘전체를 보고자’ 한다. 전체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우주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 눈에 보고자’ 한다. 그 방식은 설득력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우주를 본다는 것은 지구에 발붙이고 하늘을 본다는 뜻이며, 현대과학자는 우주 모델 안에 담긴 전체를 볼뿐이다. 이는 결코 전체를 한 눈에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가정과 희망 아래 탐구는 지속되며 그 결과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탐구의 보물 창고 역할을 해왔다. 하늘을 보고 사색하며 걷다가 우물에 빠졌다는 탈레스의 일화로 대표되는 ‘우주기원적 인간의 사유’는 철학자에 대한 풍자를 훨씬 넘어서는 학문의 기원에 대한 의미심장함을 담고 있는 것이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
우주기원적 사유는 또한, 무한의 전체를 인식하려는 유한한 인간이 지닌 태생적 ‘비극의 조건’일지 모른다. 다른 동물과 달리 직립인 인간은 그 시선을 하늘에 고정해서 우주를 사유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아니면 그렇게 창조되었다). 인간의 눈망울엔 우주의 빛이 담겨 있다. 끈질긴 희망과 한계에 그늘진 슬픔과 그 모순적 슬픔의 아름다움을 반사하는 빛 말이다. 그래서 와인버그도 이런 철학적 깨달음으로 글을 맺고 있는지 모른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에게 비극의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아주 드문 일 중의 하나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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