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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춤꾼’ 아이의 이유있는 반항

등록 2006-10-29 20:15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우리 반 남학생 하나가 발레를 배우고 있다. 큰 키에 길쭉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이 친구는 춤을 아주 잘 춘다. 운동회 연습할 때도 아주 돋보이길래 친구들 앞에서 시범 보이는 역할을 했다. 앞에서 늘 멋지게 잘하길래 당연히 ‘학예회 때도 춤을 추면 좋아하겠지?’ 라는 마음에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바로 학예회 댄스팀에 넣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춤을 열심히 추지 않아서 늘 야단을 쳤다.

“너 잘하면서 왜 그래!!” “조금 더 신나게! 조금 더 열심히!!”

아무리 내가 야단을 쳐도 즐겁게 연습을 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학예회 춤에 대한 성의가 없어서 매번 주의를 주었다. 그러다 아이가 일기장에 볼멘 소리로 자기의 마음을 털어 놓았다.

‘나는 학예회 댄스팀에서 춤을 추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선생님이 춤을 추라고 시켰고 또 같이 춤추는 친구들이 여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대충 춤을 추면 선생님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또 야단을 치신다. 나는 솔직히 댄스팀에서 빠지고 싶다. 정말 짜증이 난다.’

아이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차! 싶었다. 아이를 이끄는 과정에서 순서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이에게 학예회 프로그램을 설명을 하고, 너는 운동회 때도 춤을 잘 추었고 몸이 길고 춤동작이 멋지기 때문에 댄스팀에 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먼저였다. 그 이후에 아이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때는 아이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지도해 주는 것이 옳았다.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줄지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요즘 딱지치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이의 귀에 아주 은밀히 속삭였다. “있잖아. 네가 학예회 때 열심히 춤을 춰주면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딱지 너에게 다 줄게. 선생님이 볼때는 너 만큼 춤을 잘 추는 멋진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 그러니 선생님 딱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 어때?” 정말 신기하게도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얼마나 멋지게 춤을 추는지, 정말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였다.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기란 무한한 인내력을 요구한다. 일단 말하는 것이 느리고 매끄럽지 못하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주 당연한 것들을 자꾸 물어보기 때문이다. “네 마음은 이러니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공문과 잡무, 아이들 뒤치다거리에 숨이 가빠 허둥대다 보면 늘 아이들에게 “잠시만!” “나중에!”를 외치게 되니까. 그래도 잘 달래어, 잘 어루만지며 가르치고 싶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만큼 기쁜 것이 또 없을 테니까.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ozoazoayo@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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