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진/한국싸이버대 교수
학습 클리닉 /
공부한다고 방으로 들어간 성민이, 잠시 뒤 화장실을 간다고 나온다. 그리고 이번엔 냉장고. 방으로 들어갔나 싶더니 다시 나오는 성민이. 이번엔 동생방을 찾는다. “야, 너 공부 열심히 해라~. 딴 짓하지 말고.” 이쯤 되면 어머니의 시선은 성민이의 머리 뒷꼭지에 따갑게 머물 수밖에 없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뭔가를 시작하는 것, 활동을 전환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리라. 더군다나 공부처럼 지겹고 힘든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공부의 시작을 막는 가장 큰 적은 아마도 공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생각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성민이는 지금 쉽지 않은 싸움을 앞두고 있는 초조한 병사와 같은 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성민이의 이른바 ‘산만한’ 행동들이 초조한 마음에서 나왔다면 쉽사리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그런 행동을 그대로 하되, 다만 그 행동의 순서를 한번 정해보자고 제안했다. ‘나(성민이)는 공부하려고 할 때, 화장실을 갔다 오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동생방도 다녀온 뒤 자리에 앉는다. 한 차례로 안 되면 두 차례 또는 세 차례 이런 행동을 반복한다.’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천하기 어려운 제안은 아니라고 여겨졌던지 성민이는 한번 그대로 해보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이런 행동 순서에 대해 ‘공부 준비 절차’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성민이의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이제 성민이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순서를 의식하게 됐다. ‘화장실을 갔다 왔으니, 이젠 냉장고로 갈 차례다’와 같이 순서를 의식하게 되면 무작정 산만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므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공부하기 전에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 대처할 수 있는 방패로 이런 행동 절차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성민이가 마음만 내킨다면 이 ‘공부 준비 절차’는 다양하게 바꿀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한다’, ‘오늘 공부할 책을 보기 좋게 책상 위에 챙겨 둔다’, ‘공부가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등 메뉴는 다양하다.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펴기까지 무수한 싸움을 해야 한다. 싸움의 승패는 싸움의 요령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달려 있다. 공부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생각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이 가장 요령없는 싸움 전략이다. 가장 좋은 전략은 이런 생각들을 무시하고, 오히려 정해진 ‘준비 절차’를 꾸준히 밟아가는 것이다. 정해진 절차를 하나하나 밟다 보면 어느새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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