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나도 특목고(과학고)를 나왔다. 특목고의 사회적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이를 폐지하기보다 보완하면서 그 장점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목고 입시 열풍을 조장하고 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학원가의 행태는 정말 도를 지나친 느낌이다.
학원가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대표적인 속설이 ‘외고 가려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전문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다. 외고를 가려면 다음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 된다. 첫째 영어를 특출나게 잘 할 것, 둘째 폭넓은 글읽기를 습관화할 것, 셋째 중학교 내신성적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 그런데 이 세가지 조건을 갖추기 위해 학원을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학원에 ‘종속’되어 많은 돈을 학원에 갖다바치고 자기주도적 학습방법을 익힐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길일까?
영어를 특출나게 잘 하는 방법부터 따져보자. 영어는 일종의 ‘언어’이고, 언어습득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당연히 그 언어에 노출된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즉 거칠게 봐서 영어실력은 ‘시간싸움’이다! 그렇다면 학원에서 ‘이걸 해야만 외고에 갈 수 있다’고 협박(?)하는 각종 특별강의에 목매달지 않아도, 얼마든지 영어실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값싼 학습지 프로그램을 활용한 학생이 값비싼 영어학원에 다닌 학생보다 고수가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과 서점에 널려있는 영어 고수들의 공부 방법들을 참조하면서, 영어에 대한 시간 투자를 꾸준히 늘려 보라. 외고를 갈 만한 어학 재능을 가진 학생이라면, 충분히 높은 성취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폭넓은 글읽기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구술면접과 학업적성검사 때문이다. 서울지역 외고에서 치르는 구술면접고사의 경우, 올해부터 수학교사가 출제에서 배제되는 등 이른바 ‘창의력수학’이 제외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문과계열 대입 논술·구술시험과 상당히 유사해졌다. 당연히 관심영역이 다양하고 많은 글을 읽어온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경기지역의 경우 학업적성검사의 일부로 창의력수학 문제가 계속 출제되겠지만, 창의력수학이라는 것이 결국 교과과정 안팎의 수리적·논리적 추론 문제들이므로 중학교 수학 교과과정을 충실히 공부한 뒤에 입시를 몇 개월 남겨놓고 기출문제·예상문제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연습하면 된다.
지난해에 상담을 했던 학생 중 한명이 ‘특목고 전문학원 한달 다니고서 대원외고에 합격했어요’라고 연락해왔을 때,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지난해까지는 서울지역 외고에서도 창의력수학문제가 출제됐다). 평소에 교과내용을 엄밀하고 논리적으로 학습하는 습관을 들인 학생에게는, 창의력수학을 단기간에 준비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 또 어떤 학부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우리 동네 학원에서 그러는데, 외고를 가려면 우리 애가 영재수학이나 창의력수학을 꼭 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자녀가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니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와이즈멘토 이사, EBS·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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