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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원업, 환상과 현실 사이

등록 2008-03-16 15:24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학원가에 뭉칫돈이 떠돌아다닌다. 대치동의 잘나가는 학원들은 다들 인수합병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다. 내 주변만 봐도, ‘이런저런 조건으로 학원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학원에 투자하려는데 전망이 어떤가’ 등의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수백억대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거의 컨설턴트 노릇을 해줘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이것들은 대부분 ‘눈먼 돈’이다. 한국의 사교육 시장에 대한 환상에 기대어 굴러다니는 돈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사교육시장이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이며 90년대 이후 계속 팽창해 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사교육 시장에 엄청난 돈이 흘러든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님에도, 왜 삼성이나 현대 같은 유수의 대자본이 진출하거나 성공한 사례가 없는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학원업이 아직 ‘산업 이전의 산업’이기 때문이다. 학원업은 장치나 설비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학생과 대면하는 선생 개개인의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그 선생의 역량은 공식적인 언어로 정리되고 전수되기 어려운, 이른바 ‘암묵지’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높은 수준의 불안정성이다. 학원이 잘된다 싶었다가도 강사진들이 더 나은 자리로 떠나면 바로 학원이 망가진다. 설비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서, 새 학원을 설립하는 것도 쉽다. 이 때문에 학원 강사들은 실력을 인정받고 경력이 쌓이면 새 학원을 차리는 게 관행이다.

오프라인 학원들이 수백억대의 펀드를 유치하고 코스닥을 목표로 진군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학원 모델은 그 성장성에 뚜렷한 한계가 있다. 매출을 늘리려면 새로운 지역에 학원을 신설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그 지역의 터줏대감 학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강사진을 구성하기부터가 쉽지 않다. 학부모들은 학원 선택에서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의 학원에 호기심은 보일지언정 실제로 자신의 아이를 그 학원에 선뜻 보내지는 않는다. 결국 학원 신설로 인해 매출은 늘어날지라도 이익률은 낮아지며,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기간 도중에 강사진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사업모델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에 다들 온라인 교육사업을 끼워놓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하지만 온라인 교육시장에서는 교육방송과 메가스터디가 어마어마한 진입장벽을 쳐놓고 있다. 다들 메가스터디의 성공 신화를 보고 환상을 품지만, 메가스터디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준 특수한 조건과 상황이 반복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나는 사교육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기왕에 교육업계로 흘러드는 돈이 적어도 ‘돈놀이’보다는 나은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투자하는 쪽이나 투자받는 쪽 모두 ‘교육업이 산업다운 산업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콘텐츠와 사업모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범 곰TV·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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