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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입학사정관제, 무늬만 미국식?

등록 2008-03-23 15:59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1990년대 후반 이후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유럽식 대학평준화 제도가 많이 거론됐다. 프랑스ㆍ독일ㆍ스웨덴 등의 대학평준화 제도는 대략 ‘일정 자격을 획득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대학 입학을 허가하는’ 제도다. 만일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시행한다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3대 교육 병폐(입시과열 문제, 학벌주의 문제, 사교육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대안의 현실성이다. 평준화하려면 대학들 모두 또는 적어도 상당수가 국공립대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사립대학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대학을 평준화하려면 거의 ‘혁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식 제도는 어떨까? 미국 제도를 들여다봐도 역시 점수경쟁에 매몰돼 있는 우리 교육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드러난다. 물론 미국에서도 성적이 대학입학에 중요한 작용을 하기는 한다. 한국처럼 수능(SAT)과 내신성적(GPA)이 반영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신성적의 의미와 기능이 다르다. 고교 내신교육이 주입식이 아닌 토론형ㆍ탐구형 교육인데다가 평가방식도 주관식 논술형이 주축을 이루기 때문에, 내신성적이 수능과는 별도의 독립적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래서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평균적으로 수능에 필적한다.

미국 대입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성적 이외의 요인’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각종 교내외 활동에서 자신의 특기와 열정, 품성 등을 보여주지 못하면 명문대 합격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2400점 만점의 에스에이티에서 2300점짜리가 떨어지고 2100점짜리가 붙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엠아이티 신입생의 50%가 학교 운동부 대표선수 출신이고 특히 주장 출신이 신입생의 20%를 차지한다는 통계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내가 아는 한 고등학생은 방학 때마다 제3세계 빈곤 국가에 가서 집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에 한두 달씩 시간을 할애한다. 나중에 이 학생의 대입원서에 첨부될 각종 자료와 에세이, 추천서 등은 이런 활동을 통해 길러진 식견과 리더십을 입증해 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요소야말로 엘리트가 되는 데 필수 조건으로서 학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리라. 반면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는 예로부터 ‘최고로 시험성적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특목고를 나와 스카이에 진학한 뒤 고시공부에 매달린다. 하버드를 중퇴하고 사업에 뛰어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주커버그 등에게서 볼 수 있는 열정과 비전을 이들한테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좋건 싫건 간에 한국의 대입제도는 또 한번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식 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잘 운영되면 미국처럼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는 새로운 문화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 운영되면 고교등급제를 승인하는 창구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좌우해 온 분들은 대부분 미국 유학파였음에도 여태껏 만들어낸 제도는 결코 미국식이 아니었는데, 입학사정관제 또한 ‘무늬만 미국식’으로 끝나지 않을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곰TV·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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