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교육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항상 ‘평준화’라는 개념의 주위를 빙빙 돌게 되어 있다. ‘평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해체하자, 보완하자, 유지하자, 전면화하자 등 다양한 답변이 나오는데, 이것은 교육에 대한 이해와 시각이 서로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평준화라는 용어가 다양한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평준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도하기 앞서, 일단 ‘전국민적인’ 개념 정돈이 필요하다.
평준화의 첫번째 의미는 ‘무시험 학교배정’이다. 흔히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평준화 정책을 도입했다고 얘기하는데, 이것을 정확히 표현하면 학교별 경쟁적 학생 선발을 폐지하고 무시험 학교배정을 시작한 것이다. 무시험 학교배정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학교별 선발은 폐지하지만 고입 연합고사나 내신성적에 따라 일정 성적 이상이 되는 학생에게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문계 고교 정원을 충분히 늘려 원하는 학생 전원에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시험 학교배정이 도입된 것은 당시 경쟁적인 성적순 선발로 말미암아 어린 학생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과외 망국론’이 나왔기 때문인데, 최근 특목고와 자사고의 증가로 생기는 현상과 상당히 비슷하다. 참고로 이런 의미에서의 평준화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제도이며, 일부 학교 선택제를 도입한다 할지라도 선지원 추첨배정을 취하므로 무시험 학교배정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평준화의 두번째 의미는 ‘공·사립에 대한 균등한 정부지원’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평준화해 학생들을 균등하게 배정하려다 보니 공립과 사립의 교육여건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고, 따라서 사립을 실질적으로 공립화하는 수준의 지원을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이 제도는 비정상적으로 사립학교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데다, 최근 사립학교에 대한 각종 논의를 복잡하게 만드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평준화의 세번째 의미는 흔히 ‘붕어빵 교육’이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일컬어지는 ‘교육과정의 획일화’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교육과정에 대한 관료적 통제가 강하다. 교육과정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속속들이 통제되고 있어 교사의 창의성이 계발될 여지가 적고, 지나치게 많은 양을 가르치고 배울 것을 요구해 주마간산하는 주입식 수업이 유발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지향적인 탐구형·토론형 교육이 발붙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평준화의 네번째 의미는 학력의 편차가 작아져 균일해진다는 뜻이다. 흔히 ‘하향평준화’라는 말을 쓸 때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데, 하향평준화론이나 학력저하론 자체가 근거가 없는 얘기임은 이미 본란에서 지적한 바 있다. (2007년 11월19일치 본란 “학력저하가 고교평준화 탓이라고?” 참조)
나의 주장은? 첫번째 의미의 평준화를 지켜내지 않으면 초등·중학생까지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사교육 대란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고, 세번째 의미의 평준화를 급격히 해체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이다.
이범 곰TV 강사
이범 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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