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곡여고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해서 각 분야 교사들이 협력해 완성하는 교과협력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학생들의 유시시 작품을 함께 보고 있는 윤민경 예술강사, 성민경 국어교사, 이덕주 사서교사(서 있는 왼쪽부터) 그리고 학생들의 모습이다.
시 읽고 낭송 동영상 제작 등
창의적 콘텐츠 만들어 발표
주입 아닌 ‘스스로 학습’ 효과
창의적 콘텐츠 만들어 발표
주입 아닌 ‘스스로 학습’ 효과
창의 교육 현장 / 서울 송곡여고 ‘교과협력수업’
“뭐야! 분위기가 안 맞잖아. 이건 아니야.” 김소월 시인의 ‘초혼’을 소재로 시낭송 동영상 유시시(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만들던 윤수지 양이 한숨을 내쉰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가 나오는 대목의 사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수지가 완벽주의자라서 그래. 잘했는데 뭐. 오늘까진 다 완성해야 해. 목요일 발표 때는 정호승 시인도 오실 거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나온 윤민경 예술강사가 ‘마감시간’을 알려주자 학생들 마음이 더 바빠진다.
매주 월요일 서울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1학년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이하 창재시간)의 모습이다. 도서관 독서자료와 기자재 등을 활용한 교과협력 수업이다. 지난 9월부터 1학년 전원은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고 시를 선택한 다음, 이를 이해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시낭송 동영상 유시시로 제작하고 있다. 독서자료가 풍부한 도서관에서 국어과의 시 수업, 1학기 창재시간에 배웠던 영화제작 수업을 동시에 하는 셈이다.
계기는 이덕주 사서교사가 2008 전국시낭송축제(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에 응모하면서부터 마련됐다. 이 행사는 청소년들이 시를 친숙하게 접하고 시를 통해 창의적인 낭송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해보도록 각종 지원을 해준다. 선정이 된 뒤 어떤 활동을 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성민경 국어교사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시를 유시시로 제작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즈음 교사 연수에서 유시시로 하는 수업 사례를 보게 됐는데 영상문화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잘 맞는 방법이더라고요.” 마침 영상 분야의 전문 강사도 있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하나로 송곡여고 창재시간 수업을 꾸려가는 예술강사들이었다.
9월께 이 교사와 성 교사는 예술강사들에게 협력수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성 교사는 아침 독서시간에 시 관련 자료를 나눠주면서 학생들이 참고할 만한 좋은 시를 소개했다. 기술 부분에선 윤 강사 등 전문강사의 지식이 동원됐다. “저도 이런 영화교육은 처음 해보거든요. 선생님이 제안하셔서 시작해 본 건데 마침 쉬운 편집 프로그램을 알게 돼 그걸 이용해 편집을 하고 있어요.” 수업의 모든 진행과 조율은 이 교사가 맡는다. 창재수업이 열리는 공간이 도서관인 만큼 수업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 그리고 독서자료 등을 제공하며 도구나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준다.
학생들은 시를 찾아 읽고 이해한 뒤 시의 각 행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관련 이미지를 찾는다. 다음은 윤 강사가 알려준 매직온(동영상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미지를 편집하는 작업이다. 편집 뒤엔 시를 입력하고, 음악도 넣는다. 시 언어가 영상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이다. 윤 강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표현 방법들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어를 그대로 검색해서 이미지를 찾는 학생이 있고, 그 시어의 추상적 의미나 전체적인 분위기 등을 파악해서 이미지를 찾는 학생이 있어요. 반 이상이 추상적 의미나 감정, 분위기를 따라 이미지로 완성하곤 하죠. 이 자체가 머릿속으로 뭔가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시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처음엔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출처 없는 시를 가져와서 유시시로 만들겠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도서관을 찾으면서 좋은 시를 발견하는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
11반 남궁다정 양과 김영은 양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소재로 한 작품을 거의 완성했다. 남궁 양이 생각하는 주제 행은 바닷가에 쓸쓸하게 서 있는 여자의 이미지로 채워졌다. “주제 행이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여기가 포인트죠.” 같은 반 최다은 양은 이해인 수녀의 시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을 유시시로 만들고 있었다. “‘말’ 또는 ‘대화’와 관련된 이미지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죠. 아니에요. 이 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야 하고 글자체 그리고 음악까지도 시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거든요.” 최 양은 “처음엔 컴퓨터로 노는 시간이라고도 생각했는데 시 공부가 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다”며 “억지로 외울 때 잘 외워지지 않던 시가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걸 보면 신기하다”고 했다. 이렇게 완성한 동영상 유시시는 목요일에 열리는 ‘정호승 시인 초청 발표회’ 때 공개된다. 시를 창작한 시인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유시시 결과물을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이 교사가 직접 시인을 섭외했다.
이번 수업은 여러 여건으로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지 못했던 교사들에게도 즐거운 경험이다. 이 교사는 “거창한 목표를 세워서 시작한 건 아닌데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창의적인 결과들을 낼 수 있어서 좋다”며 “각종 자료가 구비된 도서관이 허브가 돼 다양한 매체 수업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사 역시 “기계적인 암기 수업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형식인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저도 시 수업을 해보지만 아직도 기계적으로 뭔가를 외우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죠. 대다수 학생이 작품 제목을 보자마자 기승전결을 나누고, 수미쌍관이니 상징이니 외웠던 걸 풀어 쓰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시를 접하니 자연스럽게 그 개념이 뭔지, 그 시의 특징은 뭔지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아 좋네요.”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이번 수업은 여러 여건으로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지 못했던 교사들에게도 즐거운 경험이다. 이 교사는 “거창한 목표를 세워서 시작한 건 아닌데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창의적인 결과들을 낼 수 있어서 좋다”며 “각종 자료가 구비된 도서관이 허브가 돼 다양한 매체 수업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사 역시 “기계적인 암기 수업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형식인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저도 시 수업을 해보지만 아직도 기계적으로 뭔가를 외우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죠. 대다수 학생이 작품 제목을 보자마자 기승전결을 나누고, 수미쌍관이니 상징이니 외웠던 걸 풀어 쓰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시를 접하니 자연스럽게 그 개념이 뭔지, 그 시의 특징은 뭔지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아 좋네요.”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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