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역사유물 실제로 보며 궁금증 풀어봐요”

등록 2009-02-08 15:20

“엄마, 나는 사리상자가 자꾸 기억에 남아. 새겨진 문양이 정말 예뻤어.” 정민영(왼쪽)양과 오현애씨가 박물관 홍보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엄마, 나는 사리상자가 자꾸 기억에 남아. 새겨진 문양이 정말 예뻤어.” 정민영(왼쪽)양과 오현애씨가 박물관 홍보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창의 교육 현장 / 문제해결력 키우는 ‘박물관 견학’

해결할 주제 스스로 정하고
사전자료 살핀 뒤 방문해야
결과 기록하는 습관도 필요

“무조건 밑줄 긋고 외우면 될까? 내가 공부하던 시절과 다른 게 없구나.” 큰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고려청자가 아름답다는 걸 ‘암기하는’ 역사 공부에 의문이 들었다. 유물을 우선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번엔 다른 의문이 생겼다. “박물관 견학이 신날 순 없을까?” 다행히 큰딸이 한 학년씩 올라가면서 박물관을 찾으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들을 만났고, 함께 다니면서 ‘재미있는 견학법’도 찾게 됐다. 박물관이야기(박물관을 좋아하는 엄마들의 모임)의 회장 오현애(47·<박물관에서 사회 공부하기>, <박물관이 들려주는 경제이야기> 공동저자)씨의 이야기다.

어느새 박물관 견학 10년차다. 그사이 큰딸은 문화예술, 인류학, 사회학에 두루 조예가 깊은 예비대학생으로 컸다. “박물관과 문제해결력이요? 관련이 있죠. 작은딸이 뭘 보다가 “저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큰딸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죠. “엄마, 쟤 어디 박물관 보내야겠어.”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그걸 풀려면 어떤 박물관에 가면 된다는 걸 알더라고요. 단순히 인터넷이나 책이 아니라 박물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해진 거죠.”

“통일신라 불상 보러 가볼래?” 2월3일 오씨가 둘째딸 정민영(14·난곡중)양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을 찾았다. ‘영원한 생명의 울림 통일신라조각전’을 보기 위해서다. 보통 2주에 한 번씩 가는 박물관 견학 때 그가 딸에게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숙제나 공부를 목적으로 둔 적도 없다. 요새 뭐가 궁금한지, 잘 안 풀리는 건 뭔지 엄마의 박물관 견학은 늘 생각을 묻는 걸로 시작했다. 이렇게 ‘계기를 억지로 만들지 않는 것’이 오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견학의 첫 번째 단추다. “내가 끌려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갖고, 내가 필요해서 간다는 동기 유발이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러 간다거나 궁금증을 풀러 간다는 생각을 심어주면 좋죠. ‘자기주도적’으로 말입니다.”


‘자기주도적인 목적’을 세워주기 위해 구상한 견학법도 하나 있다. ‘테마 견학’이다. 단순히 주어진 전시 하나를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궁금한 주제를 정하게 하고, 여기에 맞는 박물관들을 순서에 맞게 둘러보고 오는 것이다. “‘나라살림’이란 주제라고 해볼까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해당하는 헌정기념관, 법원사전시실, 외교사전시실을 둘러보고, 조세박물관, 관세박물관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이렇게 테마별로 하면 석 달에서 여섯 달 정도가 걸리죠. 흔히 박물관은 그냥 전시가 있어서 간다고 생각하죠. 근데 아이들에게 단순 관람객이 아니라 견학 기획자가 돼볼 기회를 주는 게 좋아요. 역사 정보를 나름대로 정리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죠.”

견학을 갈 땐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 관련 도서를 미리 읽고 가게 하기도 한다. 물론 부담스러워할 경우, 관련 교과서 한 면, 사진 한 컷 정도를 보고 가는 수준에서 사전 활동은 멈춘다.

“활동지를 들고 가면 더 재밌어요.” 민영 양이 그동안 다녔던 박물관 자료가 담긴 보따리를 펼친다. 오씨네 가족들은 활동지를 들고 박물관을 찾는 데 익숙하다. 적당한 수준의 견학 뒤 활동은 견학의 재미와 의미를 남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펼친 활동지에는 ‘경제’를 테마로 놓고 여러 박물관을 찾은 기록이 있다. “이런! 글씨 좀 봐.” 민영양이 고구려시대의 구휼제도 적기, 우리나라 돈의 무늬를 표시해보기 등 문제를 풀었던 때를 기억하며 웃었다. 박물관 소개에 이어 관련 질문을 담은 활동지는 엄마가 준비한 것이다. 오씨는 “놀이하듯 쉽고 간략한 질문부터 문장으로 답을 적는 문제까지 다양하게 내줄 수 있다”고 했다. 큰딸 정은용(19)양이 몇 년 전에 쓴 ‘아프리카 박물관 견학 일기’처럼 고학년에겐 일기, 기사 등 완결된 글을 써보게 하는 것도 좋다.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견학 뒤 활동’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저학년의 경우는 홍보책자를 보면서 기억나는 유물에 동그라미 표시하기 등 놀이 수준의 활동도 할 수 있어요. 이것도 부담스럽다면 일기장에 관람권을 붙여주세요. 언젠가는 기억을 합니다. 학부모들은 근사한 결과물을 기대할 때가 많지만 그것 자체가 박물관에 싫증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이분이 요즘 인기 최고인 ‘에스라인’ 불상이에요.” 이날 견학에선 자원봉사 도슨트(전시해설사) 공복순씨가 오씨의 부탁을 받고 통일신라 8세기 관음보살상을 소개했다. 이렇게 박물관의 해설사 프로그램, 각종 시청각 자료 정보를 미리 알고 가서 충분히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견학의 소득은 커진다. “부모님들부터 박물관 정보를 알아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찾아보면 박물관도 정말 다양하거든요. 경제 분야만 해도 화폐박물관, 금융박물관 등 정말 많죠.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 등 대학 안에 있는 독특한 박물관도 있고요.”

오씨가 견학의 마지막에 강조하는 점은 박물관을 ‘공부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즐기는 박물관’으로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선 안 될 말’도 있다. “다른 게 있나요. 오늘 뭐 공부했냐고 물어보지 않는 거죠.(웃음) ‘오늘 본 불상 가운데서 꽃미남 불상이 제일 기억나지 않니?’ 정도로 질문해 주세요. 그래야 정말 문제를 풀어야 할 때 박물관이란 정보 창구를 스스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같은 문제를 풀 때 스스럼없이 관련 박물관을 찾아 정보를 얻고, 생생한 기록을 남겨 둔 딸들의 문제해결력을 보면서 알게 된 답이기도 하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