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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오고가는 문답 속 ‘스스로 철학하기’

등록 2009-03-22 20:42

권희정(왼쪽) 교사는 “교사는 수업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이면서 학생들이 물을 길어올리도록 돕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이라는 샘물을 길어다 주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길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은 권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생이 직접 진행하는 ‘질문게임’ 수업 현장.
권희정(왼쪽) 교사는 “교사는 수업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이면서 학생들이 물을 길어올리도록 돕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이라는 샘물을 길어다 주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길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은 권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생이 직접 진행하는 ‘질문게임’ 수업 현장.




창의 교육 현장 / 상명대부속여고 ‘질문게임’ 수업

한 학생이 주제 정해 발표뒤
질문 받아 논리적 답변 해야
문제 해결하는 사고력 커져

“예술의 본질은 ~다”를 알려주는 것보다 좋은 수업은 뭘까? 알려주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뭘까?” 더 좋은 질문은 뭘까?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것이다. “너는 마빡이(개그 프로그램의 일종)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니?”

좋은 질문 앞에서 학생들의 사고는 움직인다. 예를 들면 이렇다. “네. 마빡이는 예술이에요.” “왜?” “행위예술이잖아요.” “왜 행위예술이지?” “재밌고, 신나잖아요.” “근데 나는 수묵화를 볼 때 재밌고 신나지 않던데 그럼 그건 예술이 아닌 걸까?” 이쯤 되면 사고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세운 예술의 개념을 고쳐보는 것이다. 상명대부속여고 권희정(38)철학교사는 이렇게 질문을 잘 이용하면 “이론을 외워서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철학함’을 경험한 다음, 철학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16일 상명대부속여고 2학년 4반의 4~5교시, ‘철학함’을 체험하는 특별한 철학 수업이 열렸다.


“질문이 겹치면 안 되니까 먼저 하는 게 좋겠지.”

권 교사의 말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다섯 시간 반 밖에 못자면 피곤하지 않은가요?” 남궁은 양이 칠판 앞에 서 있는 김선주 양에게 질문했다. 다른 학생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왜 남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은가요?”(김혜지 양) “너무 규칙적인 것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는 게 정말 시간을 마음껏 쓰는 게 아닐까요?”(이지은 양)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를 주제로 쓴 선주 양의 글을 읽고 나온 질문들이다.

질문게임은 아홉 개의 모둠이 시간, 영화, 책, 사람, 장소, 교과, 음악, 사이트, 사건 가운데 하나를 고르고, “나는 이 ~을(를) 좋아한다”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시작한다. 특정 조의 조원 가운데 한 명이 나와 쓴 글을 발표하면, 나머지 여덟 개 조의 조원 가운데 한 명이 발표에 대해 질문 하는 식이다. 발표자는 여덟 개 질문 가운데 좋은 질문 하나를 골라 답해야 하고, 질문자가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면 게임은 끝난다.

이날 선주 양이 발표한 글은 새벽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혼자 성경책을 읽고, 하루 일과를 정리해보는 자신만의 시간에 대한 내용이었다. 선주 양은 지은 양의 질문을 골라 “이 시간에 하고 싶은 것들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지, 하기 싫은 것들을 규칙적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질문게임은 지은 양의 마무리로 끝났다. “난 항상 똑같은 일에 얽매여 규칙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규칙적인 것 전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답이 해결됐어.”

소크라테스가 추앙 받는 이유는 저서를 남겨서가 아니다. 질문을 잘 했고, 질문으로 철학했기 때문이다. 권 교사가 질문을 이용해 수업을 하는 이유도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 ‘철학함’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과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면 질문자와 답변자의 사고 과정을 알 수 있다. “질문자가 문제를 얼마나 잘 이해했고, 논리적으로 사고했는지, 답변자가 질문의 의도를 얼마나 잘 이해했고 설득력 있게 논거를 들었는지를 알 수 있죠. 이렇게 문답이 오고가면서 사고와 논리가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는 글쓰기, 토론 분야에서 논리력과 문제해결력이 길러지죠. 어떤 학생이 그런 일화도 얘기하더라고요. 논술을 쓰는데 친구들이 질문하는 게 환청처럼 들려서 그것에 답하면서 글을 썼다고.(웃음)”

‘생각하고, 쓰고, 질문하고, 답하는’ 질문게임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 글을 쓸 땐 공책의 3분의 2는 반드시 채운다. 글에는 구체적인 경험 등 사례를 하나 이상을 반드시 넣는다. 빈 공책을 보고 두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권 교사는 단락 서두의 운도 띄워준다. “나는 이 ~을(를) 좋아한다”가 첫 단락이면, 다음 단락은 ‘왜냐하면’, ‘예를 들면’, ‘정리하자면’순으로 시작하라고 접속사만 알려주죠. 물론 그 뒤는 아이들이 능력으로 채우는 거고요. 어떤 책에서, 어떤 사례에서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가져오는지 그 다음은 아이들의 문제해결력이죠.”

모든 질문이 다 좋은 질문은 아니다. 권 교사는 “구체적이면서 본질을 꿰뚫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했다. “<질문의 힘>이란 책을 보면, “어떤 인생을 사셨나요?”라는 질문보단 “살아오면서 자신 있게 사용하게 된 도구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더 좋다는 얘기가 나와요. 구체적인 사물로 답을 유도하면서도 본질적인 이야기를 유도하기 때문이죠.”

권 교사는 “설명을 듣는 것도 이해의 과정이니까 사고하는 게 맞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냥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생각 즉, 자기주도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며 “질문은 ‘생각하기’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로 이끄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논술 답안 채점 결과 발표를 보면 천편일률적이란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똑같은 교육과정대로 설명하거나 외우게 한 탓도 있죠. 철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도 훌륭한 모델이지만 자칫 교조적이 될 수 있어요. 이론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데 학생들이 스스로 철학을 해보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해보면서 철학이 뭔지 직접 만나는 거죠.”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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