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왼쪽) 교사는 “미술 교사야말로 문학·역사·철학·언어 등 다방면으로 눈과 귀를 열어두는 통합적 지성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뉴스·광고·그림책 등 일상적 이미지를 가져와 객관적이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찾게 해주는 김 교사의 수업 현장이다.
창의 교육 현장 / 인천 신현고 ‘통합 미술수업’ 광고판·포스터·캐릭터 등
해석과정 거친 뒤 재창조
지식+비판적 사고력 ‘쑥쑥’ 시각 이미지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시대엔 어떤 미술교육이 필요할까? 지난 3월 10일 인천 신현고 2학년 12반 교실에선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이 되는 미술수업이 열렸다. “이거 너희가 작년 가정 시간에 함께 만든 된장이야. 기억나지?” 미술 담당 김현정(36) 교사가 된장 용기를 꺼내자 몇몇 학생들이 코를 막는다. 이날 수업 주제는 ‘우리 전통음식을 브랜드화하기’. 김 교사가 가져온 ‘신현고표 된장’에 어울리는 상품 이름을 짓고, 로고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보통의 미술수업이 뭔가를 그리고 만드는 데만 중점을 둔다면 김 교사의 수업은 ‘생각’과 ‘통찰’이 우선이다. “먼저 ‘전통 음식’ 하면 떠오르는 걸 유추해서 단어로 적어보자. 개인적 경험에 비춰 ‘된장’ 하면 유추되는 단어도 적어보고.” 김 교사의 말에 학생들이 펜을 굴린다. 메주, 할아버지, 할머니, 가마솥, 장독대. 빈 종이는 어느새 여러 단어로 채워진다. 1학년 학생들도 비슷한 미술 수업을 한다. 일명 ‘마그리트 수업’이다. 밤과 낮이 공존하는 ‘패러독스’(역설) 그림으로 유명한 마그리트의 <빛과 제국>을 보고 표현 특징을 생각해 단어로 적는 활동부터 한다. 활동지에 자신이 적은 단어를 평론가들의 언어와 비교한 뒤엔 ‘패러독스’가 담긴 다양한 창작물을 만난다.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의 빛’ 등 패러독스의 문학적 사례도 만나고, 광고, 그림책, 영화포스터 등 사회 속 시각디자인 요소도 만난다. “제 미술이요? ‘통합’이에요. 가정, 미술, 국어, 사회 과목 등이 통합된 형태죠. 아이들에겐 ‘짜증나는 수업’일 거예요.(웃음)” 수업을 이끈 김 교사는 우스갯소리로 수업을 자평했다. 미술 시간을 단순히 오리고 그리는 표현활동 시간에 가두지 않고 사고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림 속에 담긴 과장, 역설 등 다양한 요소를 읽고, 해석하는 ‘지적 체험’을 하기 때문에 김 교사의 미술 시간에는 부지런히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언어적 훈련도 하고, 사회나 역사 분야의 지식도 가져오게 되죠. 또 어떤 맥락적 지식도 끌어오고요. 아마 머리가 바쁠 겁니다.(웃음)” 이런 수업은 전통적인 미술교육에 대한 아쉬움에서 출발했다. “일상에서 찾아보세요. 이미지가 권력이 된 시대잖아요. 시각화된 상징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비평하는 능력만큼 중요한 게 없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자신만의 창조적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능력도 중요하고요. 그게 바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문제해결력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이 능력을 기르려면 통합적 사고, 비판적 사고가 핵심이죠.” 김 교사가 ‘통합형’, ‘생활 밀착형’ 미술 수업에 자신감을 갖게 된 데는 현장 경험으로 다져진 이력도 한몫을 했다. 김 교사는 복식디자인을 전공하고 숙녀복 디자이너, 생활용품 해외바이어 등으로 일하다 7년 전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교육에서 미술교육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보겠다며 겁없이 들어왔죠.(웃음) 감상, 비평 그리고 창의적 사고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 미술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맞다! 여기 이런 문제를 보고 무릎을 친 적도 있었어요.” 김 교사가 내민 종이는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 등 마그리트 그림과 이미지에 대한 관점이 담긴 글을 지문으로 제시한 2003학년도 연세대 논술 문제였다. ‘통합 미술 수업’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교사는 오감을 열고 수업의 재료를 찾아다녀야 한다. 지나치기 쉬운 길거리 광고판, 뉴스, 영화포스터부터 제품의 캐릭터, 손글씨(calligraphy)까지 일상의 다양한 시각 매체에서 수업의 ‘거리’를 건져온다. “미술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하다는 걸 강조하죠. 이런 재료로 동기 유발을 하면 학생들은 흥미를 갖고 능동적으로 통찰을 해봅니다.” 재료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정답 맞히기’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창의적 생각을 해보도록 유도하는 노련함도 필요하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죠. 정답을 찾으려는 아이, 선생님이 뭘 원하는지 마음을 헤아리려는 아이. 근데 제가 원하는 건 그 아이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전 수업 시간에 엉뚱한 발언을 하는 학생을 더 좋아합니다.” 이날 12반의 수업에선 ‘속편한 된장’이란 제품 이름과 로고 아이디어를 낸 팀이 큰 박수를 받았다. “우리 전통 음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몸에 좋고, 먹으면 속이 편하다는 거잖아요. 속이 편하다는 걸 강조하려고 ‘속’자를 웃는 모양으로 표현해봤어요.” 발표를 맡은 이지수양의 설명이 끝나자 김 교사가 평을 덧붙였다. “어른들이 소화가 안 될 때 된장국에 밥 말아 먹으라고 하죠. 된장 등 전통 음식을 먹어본 개인적 경험을 가져왔고, ‘속’이란 글자 모양을 통해 적절하게 은유와 상징을 한 좋은 작품입니다.” 지수양은 이런 미술 수업에 대해 “공부한다는 느낌보단 실제 사회에 나와 내 창업 준비를 하는 시이오(CEO)가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 교사는 “내 미술교육은 단순히 진학을 위해 단편적 지식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풀어야 통합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보는 시각화된 것들을 직관으로 통찰해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한 다음, 소통하는 능력까지 정말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그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줘야죠.”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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