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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친구에게 배워주고 배우고 ‘협동학습’

등록 2009-03-29 15:43

이경은(왼쪽) 교사는 “이 세상에서 수학이 제일 싫다”며 일찍 손을 놓는 학생들이 친구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면서 좌절하지 않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은 모둠별 수학게임 규칙을 설명하는 이교사의 모습이다.
이경은(왼쪽) 교사는 “이 세상에서 수학이 제일 싫다”며 일찍 손을 놓는 학생들이 친구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면서 좌절하지 않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은 모둠별 수학게임 규칙을 설명하는 이교사의 모습이다.
여러 학생 짝 이뤄 문제 풀며
지식속 숨은 뜻 깨닫는 효과
선생님은 기다려주고 중재만




창의 교육 현장 / 서울 한울중 ‘모둠 이끔이 수업’

특별히 문과가 적성에 맞아서가 아니다. 수학과의 악연을 이유로 문과를 고르는 학생들이 많다. 한 번 생긴 악연의 고리는 풀기 어렵다. 계통이 뚜렷한 수학에서 한 번 뒤떨어지면 계속해서 낙오자가 되기 쉽다. 패자부활전도 없이 수학과 담쌓고 손을 놓는 학생들을 어떻게 도울까?

서울 한울중 이경은(32) 수학교사의 문제 해결 방법은 모든 학생에게 학생이면서 교사가 돼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친구를 가르쳐보고, 친구에게 배워보는 일종의 협동학습 환경을 만들어주는 ‘모둠 이끔이 수업’이다.

지난 3월 24일 한울중학교 1학년 9반 교실. 학생들은 소인수분해 총정리를 주제로 ‘모둠 이끔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교사가 지난 시간에 이어 약수를 설명한 뒤 학생들은 모둠별로 학습지를 풀었다.

보통 네 명으로 구성된 한 모둠이 문제를 풀 때는 규칙이 있다. 네 학생이 둘씩 짝을 이뤄 서로 자신의 짝을 챙기는 것이다. 제한 시간 안에 짝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기다려준다. 짝과 답을 맞춰보고 다른 부분이 있을 때는 왜 다른지 얘기해보고, 맞힌 친구가 틀린 친구에게 설명해준다. 두 쌍의 학생이 문제를 모두 해결하면 그 모둠은 박수로 교사에게 신호를 보낸다.

“푸는 동안 기다려주는 거예요. 틀린 사람이 있으면 왜 틀렸는지 보고, 같이 고쳐보고요.” 1부터 30까지 숫자의 약수를 찾아 적는 학습지를 다 풀고 친구 이은혜 양을 기다려주던 이명후 양의 이야기다. 같은 모둠 이혜원 양은 친구에게 가르쳐주고, 가르침을 받기도 하는 이 수업이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잘 몰랐어요. 근데 문제를 풀고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다시 푸니까 답만 보이는 게 아니라 뭔가 정리가 돼요.(웃음)” 혜원 양의 소감은 이 교사가 수업을 통해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과목들과 비교할 때 수학시간에는 개인이 쉽게 고립될 수 있다. 한 번 뒤처지면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둠 이끔이 수업’은 다른 친구와 소통하며 배움을 나누는 기회를 준다. 또 개념을 외우거나 공식에 기계적으로 숫자를 대입하는 기계적인 문제 풀이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단 가르치는 학생은 친구의 풀이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하고, 쉬운 말로 친구의 사고가 틀렸다는 걸 설명해야 한다. 이 교사는 “문제를 잘 푸는 것보다 친구가 뭘 모르는지 이해해서 짚어 설명해주는 과정이, 더 높은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의 걱정처럼 ‘배워서 남을 주는 일’이 아니라 ‘남을 주면서 배우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설명을 듣는 학생은 일종의 개인지도를 통해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건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이 교사는 ‘수준별 문제’를 통해 이 학생들이 최대한 자기 수준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고 수업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모두 같은 난이도의 문제를 푸는 건 아니에요. 모둠별로 어떤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서 모둠 점수를 높인다면, 조금 못하는 학생은 쉬운 단계를 해결해서 모둠 점수를 높이는 데 기여하게 하죠. 무임승차를 하게 하면 잘하는 학생들만 계속 하게 되니까요.”

이 교사가 생각하는 문제해결력이란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수학 개념 이면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친구와 함께 틀린 문제를 고쳐보고, 문제 푼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어보면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소수는 이거다”라고, 선생님이 여러 명을 놓고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소수라는 개념의 성격을 잘 살펴보면서 개념 뒤의 의미까지 알게 되는 거죠. 문제해결력은 곧 사고력 같아요.”

이런 수업을 하게 된 계기는 이 교사가 교직생활을 막 시작했던 구로중 재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중력·의욕은 낮고, 성적 편차도 크고…걱정이었죠.” 비슷한 고민을 하던 교사들과 모여 공부를 시작하다가 ‘사단법인 수학사랑’을 알게 됐고, 이곳에서 인연이 닿아 (맥락으로 이해하는 수학)라는 책의 번역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 시간에 깨닫게 된 것은 “가르치는 내용만큼 방법론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마침 이 교사가 참여해 번역한 책을 수학 수업에 사용할 예정이던 이우학교가 구로중과 배움공동체로 연계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수학 시간 협동학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 교사는 “이 시간에 가장 중요한 건 배움을 나눌 자세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강조하는 게 ‘배움과 나눔’, ‘긍정의 힘’이에요. 누구나 문제를 풀 수 있고, 가르쳐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죠. 한 예로 이 시간엔 철칙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어휘는 절대 쓰지 말자는 거죠. “너 이것도 모르냐?” 또는 “재수 없어” 같은 말은 안 됩니다.”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학습지를 풀다 손을 든 정소진 양 곁으로 이 교사가 다가왔다.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 너희들끼리 한번 해결해 봐.” 옆에 있던 정혜인 양이 소진 양에게 말한다. “이거 소수의 제곱이 아닐까?”

‘모둠 이끔이 수업’에서 교사의 구실은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기다려주고, 중재하는 것이다. 이 교사는 “많은 문제를 푼다는 생각보다는 한 문제를 풀어도 문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기다려주는 게 공교육 교사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친구가 설명하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저를 부르는 친구도 있죠.(웃음) 상세한 설명보단 중재하는 태도를 보여주죠. 개념을 완벽히 알고 쉬운 언어로 말하는 건 정말 차원 높은 문제해결력이겠죠. 또 그걸 제대로 알아듣고 소화하는 것도 문제해결력이고요. 그것이 잘 이루어질 때까지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겁니다.”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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