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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내 맘대로 말풍선, 창의력이 ‘뭉게뭉게’

등록 2009-05-24 16:22

생각의 날개를 자유롭게 펼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방법론도 나온다. 초지고 학생들은 “시사만화로 수업하는 시간에는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며 즐거워했다.
생각의 날개를 자유롭게 펼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방법론도 나온다. 초지고 학생들은 “시사만화로 수업하는 시간에는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며 즐거워했다.
시사만화 통해 사회문제·미디어 비판적 접근
상징찾기·패러디 등…“각자 생각이 모두 정답”
창의 교육 현장 / 경기 안산 초지고 시사만화 수업

“나 정답 안 가져왔어. 지금부터 너희가 생각하는 게 모두 답이야.”

교사의 두 마디에 학생들 표정이 조금씩 밝아진다. 학생들은 미네르바 사건을 소재로 삼은 두 신문의 만평 앞에서 곧 긴장을 풀고 모둠별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 게 많은 것 같아. 똑같은 능력을 가졌다 해도 학벌 위주로 사람을 보면서 관점을 바꾸는 거.” 제일 끝에 앉은 모둠에선 목소리가 시원스러운 최문주 양이 먼저 운을 뗐다. 곧 다른 조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18일 안산 초지고 영어회화실에선 ‘시사만화’를 이용한 수업이 열렸다. 과학 시간에 짬을 내 미디어 수업을 했던 강정훈(38·지구과학)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별 제안을 했다. “저녁 먹고, 만화수업 해볼 사람!” ‘광고 해석하기’ 등 강 교사를 통해 미디어 수업의 재미를 맛본 3학년 문과 여학생 11명이 모였다.

지구과학 교사가 미디어 수업을 한다니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기도 하다. 사실 계기는 소박했다. 교직생활 초창기였던 10여 년 전, “학생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다. 소통거리를 생각하던 강 교사는 학생들과 자신이 공통으로 관심을 두는 것들을 발견했다. 영화, 음악, 만화, 게임, 광고 등 미디어였다. “제가 본래 즐기는 문화에 관심이 많거든요. 전공은 지구과학인데 어릴 때부터 클래식, 연극, 음악, 미술 등에 관심이 많았죠. 대학 때 신문에 문화 관련 글도 많이 썼고요. 남들 영어 공부할 때 “나는 교사가 될 거니까 교사로서 아이들과 소통할 거리를 찾자”고 생각했죠. 책 한 권 더 보고, 신문 한 줄 더 읽고, 학생들 좋아하는 음악 한 번 더 듣고. 그게 이렇게 연결이 됐습니다.”

2000년부터는 ‘깨미동’(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을 통해 비슷한 뜻을 나누는 교사들과 만나게 됐다. 흔히 미디어 교육을 영화나 영상을 만드는 제작 교육에 한정 지어 생각하지만 여기 모인 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미디어 홍수 속에서 미디어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 먼저라고 봤다. 강 교사가 미디어 수업 때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일반 단체의 미디어 교육을 보면 삶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제작만 가르치죠. 미디어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돼 있고, 그것들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죠. 그런 고민을 해야 일상에서 생각하는 능력, 비판적인 판단력 등이 나올 수 있는데 말이죠.”

만화를 싫어하는 청소년이 있을까? 시사만화는 미디어 중에서도 효용가치가 높은 수업 도구다. 강 교사는 일단, 세상 소식을 흥미롭게 접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시사만화의 가치를 높이 샀다.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보충수업 때 용산 참사 이야기를 해줬더니 어떤 아이가 그러더군요. ‘전지현 핸드폰이 복제됐대요!’ 관심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 교사는 “시사만화 수업 때는 이왕이면 학생들에게 익숙한 캐릭터나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만화나 최신의 따끈따끈한 소식을 소재로 한 만화가 좋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시사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시사만화의 고유한 성격을 잘 분석해 수업을 하면 단순히 세상 소식을 접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다른 관점의 만화 분석하기, 속편 그려보기, 상징 찾기, 헤드라인이나 말풍선 써 보기, 패러디하며 개작하기, 만화를 보고 연기로 옮겨서 표현해보기 등이 손쉽게 해볼 수 있는 활동들이다.

답이 정해진 수업에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소외되기 쉽지만 정답이 없는 미디어 수업에선 모든 학생이 수업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 강 교사는 “이런 수업을 하면서 진짜 창의력이 뭔지를 새로이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신기한 사실은요, 진학률이 높은 학교 친구들은 오히려 이런 퀴즈나 비교 분석하는 문제를 잘 못 풀어요. 틀에 박혀 있죠. 오히려 성적 낮은 학교 친구들은 엉뚱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창의적인 답을 내놓아요. 전 이 학생들에게 창의적 문제해결력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봐요. 창의력이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잖아요.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항상 같은 방법만 대입하는 건 창의력이 아니죠. 그 방법으로 안 풀렸을 때, 효율성이 없을 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합리적인 선택 안을 찾는 게 문제해결력이고요. 그걸 위해선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죠.”

이날 수업의 마지막 문제는 스승의 날에 나온 한 신문의 만평을 보고 빈 말풍선을 채우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스승의 날 노래를 들으며 교탁 옆에 쓸쓸하게 서 있는 남자 교사가 무슨 말을 할지를 상상해 발표했다. “근데 이 선생님. 그림자가 없네!” 조현진 양이 아무도 못 본 걸 찾아내자 모두 탄성을 내뱉었다. “맞아!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던데 그림자가 없어졌네.” 강 교사의 칭찬에 다른 친구들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놨다. “혹시 저 노래, 다른 반에서 들려오는 거 아닐까?” “저 선생님, ‘성적이나 보고 노래해라!’라고 말할 거 같아.”

수업이 마무리될 즈음, 강 교사는 말풍선에 글을 적는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열심히 생각해 봐! 재밌게 쓸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쓸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 쓸 수도 있고. 모두 좋아.” 문주 양은 이런 수업이 “정답 위주로 공부하는 우리들한테 생각할 시간을 줘서 좋다”고 했다. “요즘엔 논술도 정답이 있다고 하고, 그렇게 가르친다고 하잖아요.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부담 없이 생각하고 발표할 수 있고, 친구들 누구나 다 참여하는 분위기라서 좋아요.”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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