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재밌는 ‘생활 속 문제’ 교실에서 진지하게

등록 2009-05-17 15:55수정 2009-05-17 15:56

문제중심 학습에선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지식의 바다를 탐험하지만 교사의 안내가 필수적이다. 사진은 이원경 과학전담교사가 학생들의 자료조사에 대해 설명을 더해주는 모습이다.
문제중심 학습에선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지식의 바다를 탐험하지만 교사의 안내가 필수적이다. 사진은 이원경 과학전담교사가 학생들의 자료조사에 대해 설명을 더해주는 모습이다.
창의 교육 현장 / 이대부속초교 문제중심 학습

“수학자 될 것도 아닌데 수학은 왜 배워?”, “과학고 가냐? 공식만 외우면 돼.”

공부가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여러 탓이 있지만 교과교육이 현실과 연결고리를 맺지 못한다는 문제가 크다. 학교 때 우등생으로 손꼽히던 학생들은 실제 사회에 나와 갖가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땀을 뺀다.

이화여대 사범대 부속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공부는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푸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일상에서,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한다. 이 공부가 왜 중요한지를 느끼게 하는 문제중심 학습 덕이다. 문제중심 학습은 수업 도입 때 실생활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해 흥미를 이끌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탐구하도록 돕는 학습법이다.

공부 진정한 ‘존재이유’ 찾아

“자, 우리 수업이 어디서 시작됐죠? 질문이죠! ‘만약 우리가 우주로 이주해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이었어요. 지난 시간에 우주 천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우리가 가서 살 수 있을지 조사해보기로 했죠. 오늘은 천체별로 조사한 것을 정리해볼 거예요.”

지난 5월12일 6학년 예반의 과학 수업은 지난 시간에 받은 ‘문제’로 시작했다. 이원경(28) 과학전담교사의 설명이 끝나자 모든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천체를 조사해 온 친구들끼리 모둠 지어 앉아서 서로 자료를 비교하며 지식을 다시 정리해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지식을 재구성하면서 수업의 주인이 된다. 준비해 온 책이나 인터넷 자료 등을 펼쳐놓고 각 천체의 정의, 특징 등을 적기도 하고, 조사 결과가 다른 친구들과 토론도 한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는 ‘문제를 위한 문제’가 아니다. 이 교사는 “학생들도 뉴스에서 미래에는 핵전쟁, 쓰레기, 질병 문제로 지구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라며 “이렇게 실생활 문제를 제시하면 동기 유발도 하고, 공부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조재국(13)군은 “수업 때마다 문제를 받으면 호기심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곳에 가서 살면 될지 조사해보고 싶어서 인터넷 자료부터 책 자료까지 열심히 찾아봤어요.”

조사하고 토론 ‘교육과정 재구성’

이는 이 교사만의 특화된 수업 방법이 아니다. 학교의 모든 교사들은 국어, 과학, 수학, 영어, 음악 등 모든 수업에서 맥락이 있는 문제를 제시한다. 이 교수법의 역사는 꽤 길다. 김정효 교장은 “사실 개교 때 학교 교육 목표 자체가 사고력, 창의성 등을 길러주자는 것이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두터웠다”고 했다. 어느 학교 누리집에 가도 볼 수 있는 구호성 목표는 아니었다. 일례로 195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학교의 모든 수업은 ‘새소식’이라는 시간으로 문을 열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전날 일상에서 배운 것, 느낀 것 등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김 교장은 “읽었던 책 이야기부터, 경험한 것, 신문에서 본 내용 등 다양한 이야기들로 학교 수업을 열게 한다”고 했다.

이 분위기 속에서 2000년도엔 교사들이 중심이 돼 ‘큰일’을 하나 벌였다. 교사 전체가 참여해 국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2005년도엔 ‘창의적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여섯 권의 책이 나왔다.

문제중심 학습은 창의성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답이었다. 당시 연구를 이끌었던 조연순 전 교장(이화여대 사범대학 학장)은 “창의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확산적인 사고만 생각하는 풍토가 있는데 그것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의미하지만 그냥 새로운 건 아닙니다. 알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 단계 뛰어넘어 새로운 걸 생각하고 제안하는 기초 능력이죠. 문제 상황에 적절하지 못하거나 도움이 안 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죠. 창의적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단편적인 게 아니라 서로 잘 조직되고 정리된 지식이에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낳을 수 있어야 창의적이죠. 그런 점에서 실생활에서 문제를 가져오게 하고, 과학과 예술, 국어와 수학 등 여러 교과를 넘나들며 지식을 구성해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문제해결력-리더십 연계 연구중

이날 예반 학생들은 다음 시간에 다른 천체를 조사해 온 친구들에게 자신이 정리한 지식을 쉽게 설명할 때 필요한 설명지를 쓰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학생들이 문제해결을 하는 동안 이 교사는 수업 코디네이터가 돼 모둠을 돌아다녔다. 문제해결에 어려움은 없는지 묻고, 핵심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구실이다. “‘블랙홀의 특징이 뭔가요? 우리가 살기에 적당한 곳인가요?’ 등 놓치기 쉬운 핵심을 다시 짚어주는 거죠. 방대한 지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겁니다.”

문제중심 학습에서 이미 안정궤도에 들어선 학교는 문제해결력과 리더십을 연결하는 작업을 새로운 과제로 염두에 두고 있다. 김 교장은 “문제해결력이 인지적으로만 접근이 됐지만 사실 인성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해결력이 있는 사람은 과제집착력, 도전과 모험 정신, 자기주도성이 강하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은 책임감, 문제해결력이 강하고요. 문제해결력을 갖는다는 건 결국 리더십을 갖는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이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리더십, 문제해결력을 갖춘 학생들은 어떤 상황을 문제로 인식할 수 있죠.”

이날 수업을 마친 엄유일(13)군은 “이런 수업이 어떠냐?”는 질문에 “특이해서 재밌다”며 문제중심 학습으로 터득한 지식 찾기 노하우를 설명했다. 엄군에겐 공부의 이유가 분명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풀기 위해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집중해서 풀고 공부해요. 인터넷 자료는요 잘못된 것이 많아요. 검증이 안 된 거라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우선 책으로 찾아보고 인터넷 정보와 비교를 한 뒤 정리를 해봐요. 이번에도 책을 직접 가져왔어요.”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