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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멍하니’ 영화감상 그만…질문과 함께 능동적 사고

등록 2009-04-19 19:14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가 북한 사람들을 너무 인간적으로 그렸다고 상영금지를 당했죠. 근데 이젠 <간첩 리철진>, <이중간첩>,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가 나오잖아요. 영화는 우리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는 매체니까 역사 공부도 가능합니다.” 김지훈 강사는 “영화 리터러시 수업을 하면서 저 상황은 뭘 의미하는지, 영화의 시대적 의미는 뭘지 등을 계속 질문해주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도록 자극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진은 김 강사의 수업 현장 모습이다.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가 북한 사람들을 너무 인간적으로 그렸다고 상영금지를 당했죠. 근데 이젠 <간첩 리철진>, <이중간첩>,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가 나오잖아요. 영화는 우리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는 매체니까 역사 공부도 가능합니다.” 김지훈 강사는 “영화 리터러시 수업을 하면서 저 상황은 뭘 의미하는지, 영화의 시대적 의미는 뭘지 등을 계속 질문해주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도록 자극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진은 김 강사의 수업 현장 모습이다.
[창의 교육 현장] ‘영화 리터러시 수업’ 영신고 김지훈 강사
영상시대에는 특별한 장애가 없어도 난독증 환자가 되기 쉽다. 말이나 글을 아끼는 시대, 이미지와 영상으로 말하는 시대에는 시각물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일상이 피곤하다. 바보가 될 수도 있다. 읽기·쓰기 능력 못잖게 이미지·영화를 읽어내는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리터러시(Literacy)란 사전적으로는 읽고 쓰는 능력을 합쳐 부르는 말(문해력)이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텍스트에 대해 이해하고 독해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포함한 개념으로 쓰인다.

머리 위로 올렸다가, 옆으로 찔렀다가. 교탁 앞에 선 김지훈(33) 영화예술강사가 팔을 이리저리 재빨리 휘두른다. “이게 뭘로 보여? 야구에서 자주 볼 텐데….”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연다. “포수… 신호?” “맞아. 야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 신호라는 거야. 다음은 이 사진을 보면서 신호와 기호의 차이를 살펴보자.” 빔 프로젝터가 비추는 이미지는 커다란 계급장 사진이었다. “이건 기호일까? 신호일까? 사실 이 계급장은 색이 바뀌었어. 1996년에 무장공비 사건이 터졌을 때….” 서른한명의 남학생들은 이어지는 강사의 설명을 통해 계급장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만났다. 4월14일 서울 영신고 1학년 8반 창의적 재량활동(이하 ‘창재’) 영화수업 현장이다. 김 강사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따라 2004년부터 여러 학교의 창재, 방과후 학교 영화수업을 진행하는 전문 예술인이다.

시각물 해석 못하면 바보

“보면 아시겠지만 단순한 감상도, 제작만도 아니에요. 제 수업엔 영화, 이미지,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간중간 들어가죠.”

사전 설명은 사실 그대로였다. 김 강사의 수업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영화수업과는 달랐다. 고전적인 영화수업이 시각물을 멍하니 보고 단순히 ‘즐기고 마는 감상’을 한다면 그는 학생들에게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영화를 감독처럼 잘 만들라는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눈을 뜨면 온통 광고, 영화 등 시각적 요소로 이루어진 세상을 만나잖아요.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웃고 말다가는 소통 능력부터 떨어지게 되죠. 시각물 정보를 제대로 읽고, 선별해서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을 기르자는 겁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꾸 질문을 던지죠.”

각종 시각물을 기초로 하는 영화 리터러시 수업은 요즘 강조되는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길러주기 좋은 텍스트다. 또 영화 매체 특성상 사회, 역사, 문학 등 여러 분야를 다룰 수 있어서 ‘교과 통합형’ 교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판적 사고·문제해결력 기르게


김 강사는 컴퓨터에 저장해 둔 수업자료를 보여주면서 다양한 예를 들었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업은 이날 8반 학생들이 배운 ‘신호와 기호의 이해’였다. “파출소에서 보는 경찰관 그림 하나만으로도 얘기가 됩니다. 옛날엔 사람을 붙잡아가는 무서운 이미지였지만 요새는 부드럽고 밝은 이미지로 변했죠. 시대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타사 제품을 광고에 등장시키면서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하는 유럽 광고는 그 사회의 분위기를 말해주죠. 그게 아니어도 광고 속 상징이 뭘 홍보하려는 의도인지 퀴즈로 풀어도 좋습니다.”

기본적인 시각물로 해석하는 훈련을 했다면 난이도 높은 수업으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유도할 수도 있다. 김 강사는 수업안 가운데 광주민중항쟁 경험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고 살인을 저지른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와 조승희 사건을 분석한 칼럼 기사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찾는 활동을 예로 들었다. “그래도 반응이 좋은 건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투 헤븐>으로 하는 수업이죠.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이 뮤직비디오는 기승전결이 분명하거든요. 그냥 감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는 겁니다. ‘손에 묻은 피는 뭘 상징할까? 비둘기는 왜 나왔지? 왜 감독이 저 컷 다음에 저런 장면을 넣었을까? 이병헌이 터널로 가는 건 죽음을 의미하는 건가?’ 때론 영화에 나온 이미지 몇 장을 주고, 순서를 마음대로 정해서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도 합니다. 이건 국어 분야죠. 영화 리터러시는 이렇게 통합 교육이 가능합니다.”

뮤직비디오 ‘투헤븐’ 훌륭한 교재

이날 8반 학생들도 완벽한 ‘통합 수업’을 했다. 수업 중 몇 분은 <교육방송>의 ‘지식채널e’를 보고, 중심내용 한 줄, 주제 한 줄 등을 적는 글쓰기 활동을 했고, 그 뒤엔 친구들이 찍어온 연속 이미지를 보면서 과학 과목에서 접하는 ‘잔상 효과’를 공부했다.

김 강사는 아직도 ‘영화수업’ 또는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여전히 영화를 보고 단순히 즐기는, ‘노는 시간’으로 여기는 편견이 아쉽고 안타깝다. “이른바 ‘잘나가는’ 지역의 학교에서 창재 수업을 했었는데 어머니들 치맛바람 때문에 못 한 적도 있었어요.(웃음) 논술 실력을 강조하고, 사고력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전 시각물로 리터러시 교육을 하는 게 생각 폭을 넓혀주는 데 정말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글쓰기의 기초인 ‘생각’을 하니까 당연히 도움이 되죠. 그리고 중요한 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고,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길러준다는 거고요. 또 이미지로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도 알려주죠. 그게 지금 시대에 필요한 문제해결력이 아닐까요.”

이날 8반 수업이 끝날 즈음 이 반의 한동완군은 “신호와 기호는 무엇과 같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화? 소통의 의미? 말 대신 표현하는 거 같아요.” 동완 군의 말에 반색하던 김 강사의 대답은 “그래! 맞아!”였다. “네가 말한 게 딱 맞아! 구성원들끼리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런 소통들이 더 많아질 거야.”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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