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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비밀 ‘밀’에 있었다

등록 2009-06-21 18:10수정 2009-06-21 19:39

대구한의대 장정희 교수팀은 물 미로 실험(water maze test)을 통해 밀 추출물이 알츠하이머병에 효능이 있음을 밝혔다(그림 1). <그림 2>는 물 미로 실험에 참여한 쥐의 궤적이다. 베타아밀로이드 투여로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던 쥐들(B)이 밀 추출물을 투여하자 거의 정상군과 같은 반응(C)을 나타냈다. 장정희 교수팀 제공
대구한의대 장정희 교수팀은 물 미로 실험(water maze test)을 통해 밀 추출물이 알츠하이머병에 효능이 있음을 밝혔다(그림 1). <그림 2>는 물 미로 실험에 참여한 쥐의 궤적이다. 베타아밀로이드 투여로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던 쥐들(B)이 밀 추출물을 투여하자 거의 정상군과 같은 반응(C)을 나타냈다. 장정희 교수팀 제공
이종원 교수, 화학공학 석사 뒤 생화학 박사 ‘전향’
4천여종 자생식물 추출물 검토…밀의 ‘위력’ 확인




미래 과학기술 현장 /

1.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

2. 자생식물이용기술사업단

3.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사업단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잖아요. 빵·면·과자 등 세계인이 즐겨 먹는 밀에 불로장생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걸 왜 여태 몰랐을까요?”

대구가톨릭대 의대 생화학교실 이종원 교수
대구가톨릭대 의대 생화학교실 이종원 교수

대구가톨릭대 의대 생화학교실 이종원 (53·사진) 교수는 최근 대구한의대 장정희 교수팀과 함께 밀 추출물이 우리 몸의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종을 감소시켜 세포죽음을 억제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을 예방·치료하고 기억력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밝혔다.

발견. “음식으로 병을 고친다”

알츠하이머병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기억 장애, 상황판단 능력 상실뿐 아니라 우울증 등 정서적 장애까지 찾아온다. 65살 이상 치매환자 10명 가운데 7명이 알츠하이머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과량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가 활성산소종을 만들어 뇌신경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생긴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아리셉트와 코그넥스 등이 있지만, 효과가 일시적이고 부작용이 있어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가 즐겨 먹는 밀에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물질이 숨어 있었다. 이 교수는 이번 발견을 통해 ‘식약동원’(食藥同源,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이란 선조들의 지혜를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도전. “학문간 장벽을 뛰어넘다”

이종원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이나 밀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를 받은 뒤엔 울산공대(현 울산대학교)에서 장래가 보장된 전임강사로 근무했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선택했다. 미국 위스콘신대 생화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미국 유학길은 순탄치 않았다. 문화적 충격뿐 아니라 학문적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자연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이 쓰는 언어는 공학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스러워하던 그에게 “학문의 길은 멀고도 험한데 1~2년내에 끝낼 것처럼 덤벼들면 금방 지친다. 길게 보고 즐기면서 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은 큰 힘이 됐다. 박사학위를 받을 즈음 럿거스대학과 하버드의대 교수를 겸임하고 있던 마틴 야무시(Martin Yarmush) 교수가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의학분야에서의 공학을 위한 센터’(The Center for Engineering in Medicine)에서 연구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공학과 자연과학적 지식을 의학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우연. “기회는 우연을 가장해 찾아온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생화학교실에 자리를 잡은 이종원 교수의 관심은 알츠하이머병이나 밀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산소’였다. 그는 간 이식 수술 과정에서 간세포배양기 내의 간세포가 산소 공급 부족으로 죽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세포 내 산소와 결합하는 미오글로빈(myoglobin)을 유전자조작을 통해 간세포 내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세포실험 결과 그의 예상대로 산소농도가 낮은 상태에서도 세포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얼마 후 유전자조작 때 사용한 항생제만 넣어도 똑같은 실험 결과가 나온다는 대학원생의 보고를 받았다. 황당했다. 그가 고심해 세운 연구가설과 실험 결과가 부인된 것이다. 병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오히려 사람의 세포를 살린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항생제가 산소 부족 상태에 놓인 세포를 살린다면, 동맥이 막혀 산소 공급 부족으로 발생하는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에도 효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가설을 세운 뒤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해봤다. 효과가 있었다. 우연찮게 항생제로 심근경색·뇌경색 등 허혈성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신약을 개발할 생각을 하니 막막해졌다. 신약 개발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그 대안으로 식품이나 한약재 등 천연물 가운데 항생제와 비슷한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고 싶었다. 값도 싸고 안전성도 쉽게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던 차에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인 정혁 박사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4000여종의 자생식물에서 식품의약을 개발하고 있단 말을 듣게 됐다. 환호성을 질렀다. 생각지 못한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부터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4000여종의 자생식물 추출물들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리고 결국 심근경색과 뇌경색의 예방과 치료에 효능을 나타내는 6종의 물질을 경북대 한형수 교수팀과 공동으로 찾았고, 그 가운데 밀을 상품화를 위한 최종물질로 선정했다.

이때까지도 알츠하이머병은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밀 추출물이 세포 죽음을 억제한단 사실을 확인한 뒤, 이 세포 죽음이 퇴행성 질환인 치매와 파킨슨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 교수는 대구한의대 양재하 교수팀에게 밀 추출물이 치매 가운데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에 효능이 있는지 의뢰했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그 뒤 장정희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지속해 오늘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지금도 알츠하이머병이나 밀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밀 속에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물질이 있단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대구/글·사진 조동영 기자 ijoe0691@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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