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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설득의 기술과 민주주의

등록 2009-11-29 19:03수정 2009-11-29 19:12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1. 프랑크족의 침입에서 이슬람인들이 배운 것은?
12. 설득의 진화 - 수사학에서 너지(Nudge)까지
13. 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화를 찍는다면

<넛지>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남성용 변기 주변은 늘 지저분하다. “화장실을 깨끗이 씁시다.”, “한 발 더 앞으로” 등등의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어도 별 소용 없다. 그런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공항에서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변기 한가운데 파리를 그려 넣은 것이다. 소변은 자연스레 파리 쪽으로 향했고, 화장실은 그만큼 깨끗해졌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아이디어들이 통하는 곳이 많다. 극장에서 팝콘은 왜 큰 봉지에 담아서 팔까? 그릇이 크면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기 때문이다. 식당 앞에 거울을 놓으면? 식사량이 자연스레 줄어든다. 투명하게 비친 늘어진 몸매는 다이어트 결심을 떠올리게 할 테니까.

〈넛지〉
〈넛지〉
‘너지’는 이렇듯 사람들을 자연스레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기술이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각각 경제학과와 로스쿨의 교수이다. <너지>에서 두 사람은 너지가 어떤 때 일어나며 어떻게 쓸 수 있는지를 세심하게 일러준다.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먼저 우리네 마음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손실기피 경향이 있다. “전기를 절약하면 350달러를 아낄 수 있습니다”와 “전기를 낭비하면 350달러를 잃습니다”라는 두 문장을 비교해 보라. 어느 쪽이 더 분명하게 다가오는가? 손해 앞에서는 누구나 가슴이 떨린다. 절절하게 호소하려면 상대가 입을 손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생각의 틀을 다잡는 기술, 프레이밍(framing)도 중요하다. 의사가 수술을 권한다고 해보자. “수술을 하면 100명 중 90명이 살아납니다”와 “수술을 하면 100명 중 10명이 죽습니다” 중에서, 어느 쪽으로 물어야 동의서에 사인할 확률이 높을지를 헤아려 보라. 신용카드로 값을 치를 때도 마찬가지다. 결제할 때 추가 수수료가 있다고 하기보다, 현금으로 내면 그만큼 할인을 해준다고 해야 판매량이 늘어난다.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도 놓쳐서는 안 된다. 자리를 정해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늘 앉던 자리를 고집한다. 물건을 살 때도 자잘한 옵션들을 일일이 고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권장 모델을 택하고 만다. 여기에는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막연한 믿음이 깔려 있다.

이른바 ‘선택 설계자’들은 이런 심리를 제대로 짚고 있다. 그러곤 너지를 요긴하게 써서 원하는 쪽으로 결정을 틀어놓는다. 그러나 지은이들이 생각하는 너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따르도록 조종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들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내세운다. 억지로 시키지 말고,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자신에게 최선이 되게끔 선택하고 행동하게 하라.

하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너지가 요긴할뿐더러 꼭 필요할 기술인 듯도 싶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게다가 크고 중요한 문제일수록 결정 내리기가 어렵다. 예컨대 집을 사고 학교를 고르는 일은 일생에 몇 번 되지 않는다. 경험이 적기에 실수하기도 쉽다. 만약 현명하고 똑똑한 전문가들이 나서서 너지를 쓰면 어떨까? 평범한 시민들이 굳이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최선의 결론을 내리도록 말이다. 실제로 미국의 건강보험 등에서는 너지 기술이 많이 쓰인다. 가장 모범이 될 만한 사항을 기본 옵션으로 하고, 굳이 반대할 경우에만 선택을 안 하도록 하는 ‘옵트아웃’(opt-out)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너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곱지 않다. 너지도 크게 보면 수사학(修辭學: rhetoric) 가운데 하나다. 수사학이란 사람들을 잘 설득하는 기술이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곳에서는 어디서나 수사학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대개 수사학은 궤변술이라며 비난받았다. 실제로 수사학이 절정에 다다르면 민주주의는 거꾸러지고 독재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수사학 교사들이던 소피스트가 판을 치던 옛 그리스의 아테네, 황제가 나타나기 전 키케로의 공화정 로마가 그랬다. 왜 그럴까?

〈자유론〉
〈자유론〉
J.S. 밀의 <자유론>은 이 물음에 답을 준다. 밀은 현명한 자들이 결정을 대신 해주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네 생각은 선택과 결단을 숱하게 내리면서 자라난다. 만약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리고 올곧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고 가면 어떨까? 시민들의 판단하는 힘은 점점 약해질 테다. 쓰지 않는 근육이 오그라들듯 말이다. 사회는 점점 어리석어지고, 그럴수록 세상은 점점 독재자에게 어울리는 모양으로 바뀌어 간다.

또한 밀은 아무리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이라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전체 인류가 다른 견해 하나를 억누르는 짓은, 한 명이 전체 인류를 짓밟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남다른 생각과 행동에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너지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다른 뜻을 품지 못하도록 길들인다. 게다가 수사학은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소피스트들은 수사학을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과연 소피스트들은 시민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설득 기술을 펼쳤을까? 그랬다면 궤변술가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을 리가 없다. 소피스트가 많은 나라가 가장 훌륭했을 테니까.

너지도 마찬가지다. 너지는 지금도 공공영역보다 정치와 상업광고에 많이 쓰인다. 이익을 낳는 기술은 발전을 멈추는 법이 없다. 하지만 너지가 더욱 세련되어지면 우리의 경제와 정치 제도는 더욱 발전하게 될까? 소피스트들이 가장 활개를 칠 때 소크라테스는 죽임을 당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는 설득과 대화 기술들로 넘쳐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_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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