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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사교육비는 덜고, 공부 즐거움은 더하고

등록 2016-03-17 15:14수정 2016-03-18 09:51

도서관이 책을 읽거나 빌려 보는 곳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문화공간, 교육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 송파구 글마루도서관에서 한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서대문도서관(아래 사진)에서는 아이들이 주산 강의를 듣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도서관이 책을 읽거나 빌려 보는 곳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문화공간, 교육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 송파구 글마루도서관에서 한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서대문도서관(아래 사진)에서는 아이들이 주산 강의를 듣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엄마와 아이들 눈높이 도서관 강좌, 3~6개월 강의 한달 1만원꼴로 저렴해 인기
여기 또 한 명의 서툰 엄마가 있다.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도 5살 아이용 영어를 배우고 있는 임윤옥(41)씨가 바로 그 주인공. 현직 영어교사인 임씨는 송파 글마루도서관에서 매주 두 시간씩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현직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임씨는 오히려 이 강의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문법이나 시험 위주의 영어공부로 ‘영어 울렁증’을 갖게 된 고등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임씨는 아이들이 책놀이를 통해 자연스레 영어를 접한다면 청소년이 돼서도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영어 동화책 읽기 강의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유창한 발음도, 복잡한 문법도 아니다. 다름 아닌 전달력이다. 때문에 도서관에서는 수업용 동화책 하나를 고를 때도 그림과 내용을 모두 꼼꼼하게 살펴 선정한다.

도서관에서 배우는 엄마들은 아이를 가르칠 때 ‘눈높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에게 당연한 건 없는 법인데 엄마는 왜 모르냐며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러던 엄마가 이제 아이 맞춤형 선생님이 됐다.

두뇌발달 도움 주산교실 인기

물론 직접 가르치는 엄마들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송이(44)씨는 아이를 한 번도 학원에 보내 본 적이 없다. “가끔 대치동 사는 엄마들이 조언도 해요. 이 학원 보내라, 이 선생님이 유명하다, 이런 말이요. 그럴 땐 문득 불안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굳이 그가 도서관에서 배우며 아이를 직접 가르치는 이유는 아이를 믿기 때문이다. “내 아이 마음은 제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가는지 망설임 없이 말하며 엄마와 공부하니까요.”

3+15+8+7=?

초등학교 2학년 영준이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인다. 엄지와 검지를 몇 번 놀리더니 곧 답을 적는다. 영준이는 서대문도서관에서 주산암산 강의를 듣고 있다. 강의실에서는 영준이 또래 12명의 아이가 열심히 주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주판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제격이다.

처음 서대문도서관이 주산암산 강의를 시작한 이유는 집중력과 수학 기초를 동시에 기르는 데 최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를 증명하듯 10분도 앉아 있기 힘들다는 6~9살 아이들은 한 시간 내내 진득하게 앉아 주산에만 몰두했다.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연산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박영희 강사는 주산이야말로 정확하고 빠른 암산 능력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만큼 주산은 두뇌 발달과 사고력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주산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으며 암산에 능숙해질 때까지는 3년 정도 꾸준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도 안 들은 학생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학생은 없다는 주산교실은 그래서인지 도서관의 꾸준한 인기 강의다.

이병예 강사는 6년째 도봉도서관에서 ‘토론하고 논술하기’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한창 놀고 싶은 토요일 오후일 텐데 1학년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는 대신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에게 굳이 책을 ‘읽어주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요즘 아이들은 듣는 연습이 부족해요.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말하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1, 2학년 수업이 끝나자 곧 6학년 수업이 시작됐다. 6년째 다니고 있다는 우진이는 하고 싶은 말을 논리를 갖춰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즐겁게 웃었다.

수업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졌다. 자신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발표하는 일이 아이들은 전혀 어렵지 않은 모양이다.

어려운 수업을 어렵지 않게 배우는 아이들도 있다. “물이 ‘증발’한 걸 거즈가 ‘흡수’했어요.” 아이들 발표 내용만 듣자면 5, 6학년 과학 시간 같지만 놀랍게도 1, 2학년 아이들의 실험 시간이다.

양천도서관 인기 강의 ‘과학실험과 놀이교실’은 매주 월요일 오후 진행된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달콤한 향이 가득했다. 오늘은 방향제를 만드는 날. 아이들은 이 실험을 통해 증발, 흡수성수지, 고체 같은 어려운 과학 단어를 ‘이해’한다. 무엇이 제일 재미있냐는 질문에는 단번에 “‘요소비료꽃’ 만든 거요”라는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과학 용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있었다.

“매주 다른 실험을 하는데 시험을 안 보니까 재밌게 할 수 있어요.” 2학년 채민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만드는 거 잘 못해도 설명 들으면 다 알 수 있어요.” 2학년 민수도 직접 작성한 실험 보고서를 보여주며 자랑스레 말했다.

5개월 과정인 이 강의는 양천도서관의 인기 강의다. 학생 16명 중 15명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 그 재미를 짐작게 했다. 특히 학교 수업과 연계된 실험이 많아 고학년이 됐을 때 어려운 과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연간 32조원 지출하는 대한민국 사교육비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연간 사교육비는 총 32조9천억원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 3배가 넘는 수치니 얼마나 과열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13살까지 아이의 공부 습관이 결정되는 시기인 만큼, 즐겁게 공부하는 태도가 몸에 배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이용자가 원하는 강의 개설

부담 없는 수강료는 도서관 강의의 장점이다. 서대문도서관 주산강의는 주 1회 1시간 6개월 과정 수강료가 4만8천원, 구로도서관 초등수학지도사과정 역시 주 1회 2시간 수업 5개월 수업료가 8만원이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3개월에서 6개월 단위 강좌 수강료는 대략 월평균 1만원 내외다. 게다가 소수 인원으로 진행되는 만큼 강사가 학생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도 높다.

서울시 25개 구 160여개의 도서관은 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 중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조사에 따르면 공공도서관 문화강좌 수강생은 2011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도서관 강의 인기 비결은 ‘주민 밀착형’ 강의 개설에 있다. 각 도서관은 매년 담당 사서가 주민의 요구와 피드백을 바탕으로 도서관 이용자에게 필요한, 또 이용자가 원하는 강의를 개설한다. 그 결과 도서관마다 특색 있는 강의가 마련돼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손성조 공보담당 사무관은 “공공도서관은 점점 더 지역 주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며 변화 중인 도서관을 설명한다. 민관 소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도서관 강의 이용률도, 이용자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도서관은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주민 밀착형 강의를 선보일 예정이니 말이다.

도서관 문화강좌는 통합사이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과 각 구립 통합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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