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물씬 풍기는 한옥의 향이 느긋하게 마음을 놓게 했다. 동네 좁은 골목 한쪽에 자리한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에서 첫 느낌은 그랬다. 서울에 웬 한옥, 그것도 도서관이 한옥이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생소하게도 서울에는 한옥으로 지은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2011년 4월 문을 연 구로구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은 전통 한옥으로 만들어졌다. 문에서부터 계단이 나무로 돼 있는 것은 물론, 책을 읽는 공간은 전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전통 한옥의 나무 마루다. 특히 겨울에는 바닥에 난방까지 들어오니 엄마들은 물론 아이들도 내 집 같은 편안함 속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지붕 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은 기분마저 따뜻하게 한다.
허리를 곧게 펴고 정좌를 한 채 독서에 빠진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6학년 한얼이는 이 동네 주민이 아니다. 어느 날 엄마가 한옥도서관이 있다고 추천해준 것을 계기로 버스를 타고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얼이가 읽고 있는 책은 만화로 된 <마르크스 자본론>이었다. 어린이도서관만이 가진 특유의 매력은 이렇게 어려운 책도 거부감 없이, 망설임 없이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직접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책과 친해지는 건 당연한 일. 일 년에 무려 50권의 책을 읽는다는 한얼이는 한옥도서관이 마음에 쏙 든다며 웃었다. 한옥이 주는 친근함에 책이 더 잘 읽힌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옥도서관 2층에는 몸을 기대며 책을 볼 수 있는 푹신한 의자도 놓여 있다. 대청마루 같은 공간에는 신발을 벗어 놓는 디딤돌도 있어 한옥의 분위기를 더한다.
도서관은 한옥으로 지어진 만큼 관리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나무에서 생기는 해충이나 벌레를 예방하기 위해 전문업체에 관리를 맡기고 있다고 도서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화재 방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소방교육도 하고 있다.
‘중랑숲어린이도서관’ 역시 어린이가 이용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어린이도서관인 만큼 모든 구조가 어린이 중심이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넓은 도서관이 펼쳐진다. 푹신한 바닥은 소음을 줄이고 혹시 모를 위험사고를 방지하는 구실을 한다. 무엇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 공간이 매우 넓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물 총면적이 약 958.89㎡나 된다.
1층은 엄마와 아이가 대화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2층은 초등학교 어린이가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미끄럼방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어린이도서관인 만큼 일회용 밴드나 상처 연고는 항상 갖춰져 있다.
이리저리 책을 고르는 12살 형빈이는 주로 언제 도서관에 오느냐는 질문에 “심심할 때마다”라고 답했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도서관은 숨소리 없이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수만권의 읽을 책이 있는 놀이터다.
서울시내에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18곳 있다.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경우도 늘었다고 도서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키즈카페 못지않은 안전시설과 다양한 종류의 책들은 아이들과 부모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특히 구입에 부담되는 백과사전이나 비싼 전문서적도 어린이도서관에서는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 아이들이 학교 숙제나 공부를 하기에도 제격이다.
외국어 서적도 다양하다.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까지 갖춰져 있어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맞벌이 부부도 어린이도서관 이용이 쉬워졌다. 서초구 구립서초어린이도서관, 강서구 길꽃어린이도서관은 밤 10시까지 열람실 이용과 자료대출이 가능하다. 가족 모두가 회원으로 가입한 뒤 책을 한 꾸러미 대출하고 다 읽으면 또 한 꾸러미를 대출해가는 식으로 이용하는 부모 이용자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는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자신을 만든 것은 동네 공공도서관이라고 했다. 어린이도서관 백희정 사서는 “어릴 때 도서관을 이용한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도서관에 데려오는 부모가 된다”며 어린이도서관에서의 독서 경험을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어린이도서관 이용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모습은 마냥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글·사진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