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 ⑥ Wee클래스 전문상담사
매년 초·중·고 떠나는 학생 6만명
그래도 학교에서 상담받는 아이는
“선생님, 저 잠깐 있다 가도 돼요?”
더 큰 위기로부터 잠깐은 멀어진다
매년 초·중·고 떠나는 학생 6만명
그래도 학교에서 상담받는 아이는
“선생님, 저 잠깐 있다 가도 돼요?”
더 큰 위기로부터 잠깐은 멀어진다
한겨레
학교는 단지 학습하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여러 예술·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고 혹시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모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학교는 이들을 강사로, 돌봄전담사로, 상담사로, 영양사로, 조리원으로 다루고 세상은 이들을 ‘아줌마’로 부르기도 한다.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보람과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받는 차별 사이에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의 실제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현장 취재 내용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했다. <한겨레>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기획으로 이철 작가가 본 학교 현장을 매주 한 차례씩 모두 10회에 걸쳐 싣는다.
정규직 전문‘상담교사’ 1800여명
정신건강·또래갈등·진로문제까지
상담교사는 한 학교에서 아이 만나지만
상담사는 두 학교 오가며 ‘보따리 상담’ 김하영씨는 아이의 불안과 외로움을 이해했다. 많은 아이가 겪는 문제였다.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 참 다행이었다. 아이는 학업중단 숙려제를 통해 학교를 잠시 쉬고, 자기 문제를 고민하는 기간을 갖고 있었다. 졸업 후 진로로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위탁교육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다. 3학년이 되면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에 관해서도 물었다. 그들과의 관계가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와 쌓은 추억을 떠올려 보게 했다.
Wee클래스 전문상담사가 진행하는 집단 상담과 힐링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Wee클래스 전문상담사가 자살위기 및 정서행동특성검사 관심군 학생들을 선별해 놓은 자료들이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어요숙려 기간 중인 학생 상담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 오면 가슴이 뛰고 손발이 차가워져서 교실에 들어가기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동네 병원에선 공황장애가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을 피했다. 아주 일찍 움직이거나 1교시가 시작한 뒤에 학교에 왔다. 아이들이 많으면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들고,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선생님, 저 지금 왔어요. 잠깐만 있다가 가도 돼요?” 1교시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이는 Wee클래스에서 다른 학생들을 피해 있다가, 2교시 종이 치면 교실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Wee클래스는 전문상담사의 사무공간과 개인 상담실, 그리고 집단 상담실로 나뉘어 있다. 아이는 학교에 늦게 오는 날이면 바깥쪽 집단상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김하영씨는 상담을 끝내고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는 아이와 쉬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겪는 증상에 변화가 생겼는지 물었고 증상을 이겨내려는 작은 실천들을 듣고 크게 격려했다. 2교시 일정은 틱 장애를 겪는 1학년 아이를 상담하는 일이었다. 틱 장애는 의지와 상관없이 몸 일부를 반복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거나 독특한 소리를 내는 질환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긴장되면 증상이 심해진다. 2교시에 만나게 될 아이는 운동 틱 장애와 음성 틱 장애를 함께 갖고 있었다. 지난번 만났을 땐 다면적 인성 검사(MMPI)를 진행했다. 이번 상담에선 문장 완성 검사(SCT)가 예정돼 있었다. 아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을 때 상담사는 이런 검사를 실행한다.
친구들한테 피해만 주는 걸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학교폭력 피해 및 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집단상담을 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제공
아픔은 전이되기 쉬워요김미경씨(가명)는 초등학교에서 일한다. 일주일에 3일은 거점학교로, 나머지 2일은 순회학교로 출근한다. 전문상담사 대부분이 두 개 학교를 담당한다. 김미경씨가 출근하는 두 개 학교 학생수를 합하면 2500여 명이다. 1년 동안 진행한 상담 사례를 모으면 300건이 넘는다. 상담사례 1건당 2~4회기 상담이 일반적이지만, 20회기 이상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처음 만난 아이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인 거 같고, 폭발적 품행 장애도 의심되는 아이였어요. 화가 나면 연필을 씹어서 뱉어내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다른 친구를 공격하는 시늉을 한다는 거예요. 담임선생님하고도 얘길 나눴는데, 감정 소모가 많으셨어요. 아이 어머니와 아이 얘길 어떻게 풀지 고민도 많으셨고요.” 두 번째 상담은 11살이었다. 아이는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는 5학년이 돼서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7살 때부터 아빠를 보는 게 어려워졌다. 1년에 한두 번 만났다. 아빠가 어디 있는지 물으면, 엄마는 외국에 출장을 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겨울 아빠를 만났을 때 아이는 무척 행복했다. 하지만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아빠를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됐다. 엄마는 일이 바빠서 밤 열 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왔다. 아이는 자살할 생각으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봤다고 얘기했다.
상담사를 공격하기도 하죠
그래도 아이가 제겐 선생님
한 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학교에 마음이 아프거나 마음이 힘든 아이들이 많아요. 천 명에 한 명 정도가 아니고 20명에 한 명 정도 돼요. 저는 상담해야 할 자해 학생이 거점학교에만 열 명 정도 밀려 있어요. 순회학교는 화, 목 이렇게 가는데 ‘이상 심리’가 나타나는 아이들을 매일 4명 이상씩 만나요. 학교폭력도 벌써 4건 발생해서 학교 폭력 대책위원회에도 들어가야 해요.” 최선희씨(가명)는 거점학교인 중학교와 순회학교인 고등학교에 출근한다. 학기 초에는 학교 부적응, 새학기증후군, 학교폭력, 자살, 자해 관련 학생을 집중적으로 상담한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Wee클래스를 홍보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도 만만치 않다.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일만 해도 벅차다. 게다가 정서·행동특성검사와 관련한 행정업무를 떠맡는 경우도 흔하다. 대상 학생을 상담하는 일은 고유 업무에 해당한다지만, 지속적 관리 업무를 포함한 제반 행정까지 맡으라는 건 상담사의 고유 업무를 벗어난 일이다.
상담사도 상담이 필요한데
교육청 지원이 없으니까
상담사끼리 상담을 해요
게티이미지뱅크
학교 못 다니겠단 아이한테“지난해 상담하다가 학생이 저를 공격한 적이 있어요. 조현병을 앓거나 경계선 성격장애인 경우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요. 과거의 일을 떠올리다가 아이가 당시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겪는 거예요. 그때 중요하게 개입된 어른을 제게 투사시키는 거죠. 일종의 전이 현상이에요. 그게 부모님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반응이 일어나면 상담하던 중에 자해한다든지 상담사를 공격한다든지,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는 거죠.” 상담사는 자신이 앉을 자리를 상담실 입구 쪽에 마련한다. 학생이 앉을 자리는 책상 너머, 입구에서 먼 쪽에 배치한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달려 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아이들을 만나 아픈 얘기를 듣다 보면 정서적으로 감염되기도 한다. 상담하는 일 자체가 감정적 소진이 큰일인 만큼 상담사는 지친 일상을 보내는 날이 많다. 이런 상황이 빈번해도 하소연할 데가 마땅치 않다. 이와 달리 정규직인 전문상담교사는 방중 연수의 기회가 보장돼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상담사는 연수비 예산 40만 원을 청구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한다는 게 좋아요. 상담하는 과정 중에 제가 치유되는 걸 경험하기도 해요. 제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실을 떠올리게 되고, 그때 겪었던 우울감을 되새기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그게 내 자녀와 내 가족과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나를 이해하는 끊어진 고리가 이어지는 경험으로 확장되기도 하고요. 그럴 땐 아이가 내 선생님 같기도 해요.” 김하영씨는 저녁 6시에 틱 장애를 지닌 학생의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가 괴로운 마음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아빠는 ‘그래 그만둬라, 네가 학교를 그만두면 돈도 안 들고 좋겠네’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 속으로 숨은 의미가 서로 다른, 이중적 의미의 언어를 아이에게 쓰는 건 피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부탁했다. 저녁 7시30분. 상담을 마친 김하영씨가 퇴근을 서둘렀다. 이철 작가
‘학교 관두면 돈 안들고 좋지’
마음에 없는 말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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