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현민 /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바야흐로 욕설과 막말의 시대가 열렸다. 티브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패널들끼리 서로를 씹어주는 것으로 시청률을 올리고 사람들은 욕설과 막말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런 방송프로그램에 환호한다.
욕설과 막말이 이 시대에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욕 안 하고 살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문제, 비정규직 문제, 교육 문제 등등 숱한 사회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제 각 후보 간 막말이 쏟아질 것을 예상하면 부지런히 욕설과 막말을 갈고닦지 않으면 어디 대화에서 한자리 끼기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여기에 더해 욕설과 막말은 문장 중심이기보다는 단어 중심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이다. 직관과 감각이 현대인의 필수 요소가 된 오늘날 욕설과 막말이 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한 여기 있다. 욕먹는 것에는 나름 짜릿한 희열이 있고 막말이 때론 친근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 사실 욕 좀 먹고 욕 좀 하는 것이 그리 몹쓸 일은 아니다.
또 때로 살다보면 정말 사람보다는 ‘개’에 가깝거나 아니면 ‘개’만도 못한 사람도 종종 만나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듯 그들을 ‘개새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개새끼’들까지도 ‘사람’을 ‘개새끼’라고 부른다는 데에 있다. 욕설과 막말은 어떤 유행어나 경구보다 빠르게 전파되고 흡수된다. 게다가 사람들은 욕설과 막말에 내성이 생겨 점점 더 강도 높은 욕설과 앞 뒤 없는 막말을 갈급하게 된다. 생각해보자, 개 같거나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보고 개새끼라고 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강도 높은 욕설을 고대하게 되는 사회, 그래서 마침내 사람 같던 사람들까지도 전부 개같이 되는 사회. 오늘날 욕설과 막말은 우리를 그런 사회로 견인하고 있다.(좆나 빠르게)
탁현민 /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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