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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는 콧잔등이 달라요

등록 2008-02-13 20:36수정 2008-02-16 14:36

지난해 5월 부여의 한 소시장 모습. 좋은 소를 고르는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지난해 5월 부여의 한 소시장 모습. 좋은 소를 고르는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매거진 Esc]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④
덩치가 크면 육질은 연하지만 고기 양 너무 적어 낭패 보기 십상

설 연휴를 앞두고 이달 3일 하루에만 소 다섯 마리를 새김질했습니다. 대목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새벽 5시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일했습니다. 평소에 두 마리 정도 새김질하다 갑자기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난번에 소 등급은 등지방 두께 등에 따라 에이, 비, 시, 디로 구분한다고 말했죠? 각각의 등급은 다시 품질별로 ‘완뿔’(+)이나 ‘두뿔’(++)로 나뉩니다. 디는 등외이니 그 이상 등급이 없습니다. 저는 에이, 비, 시 가운데 품질이 좋은 ‘완뿔’이나 ‘두뿔’만 취급합니다.

살집 더듬다가 뒷다리에 차이기도

새김질할 때 등심과 안심을 분리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등심 다음으로 까다로운 부위는 양지머리(소의 가슴에 붙은 뼈와 살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양지는 기름이 많습니다. 두터운 지방을 죄다 새김칼로 걷어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기를 고스란히 조각내지 않고 부위 전체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제가 취급하는 고기들은 가락동 도축장에서 사온 4분도체(도축장에서 4등분된 상태의 쇠고기)가 많습니다. 그 외에는 제가 직접 지방의 우시장을 돌아다니며 소를 직접 골라서 삽니다. 사정상 우시장엔 그렇게 자주 가지는 못합니다. 논산·횡성·홍성 등 우시장은 지방마다 한 군데씩 다 있습니다. 가락동에서 4분도체로 들어오는 쇠고기는 이미 등급이 판정돼서 공급이 됩니다. 저도 별로 고민할 게 없습니다. 열심히 새김질해서 등급대로 판매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시장에 가서 직접 골라 사올 땐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좋은 소를 남들보다 먼저 사는 것입니다. 좋은 소를 고르는 몇 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우선 콧잔등을 봐야 합니다. 나이 먹어 힘 빠진 소는 콧잔등이 꺼멓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콧잔등에서 시작해 막창과 막창 뒤에 ‘덜렁덜렁 매달린 것’까지 모두 봐야 합니다. 살집도 손으로 직접 더듬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육질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생각지 못했던 위험이 발생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손으로 살집을 마구 더듬는데 소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저와 함께 일하는 조도현씨는 마장동에서 일한 지 20년 가까이 됩니다. 조씨는 3년 전 논산장에서 소 품질을 검사하느라고 항문과 엉덩이를 더듬다가 소 뒷다리에 차여 숨진 사람도 봤다고 합니다. 숨지는 건 좀 심한 경우지만, 사실 소 품질을 검사하다 뒷다리에 차이는 건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새김질하는 사람으로서 제 고민은 딴 게 아닙니다. 소 길러서 납품하는 농가에서 더 품질 좋은 소를 길러줘야 마장동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아주 가끔 우시장에서 덩치만 잔뜩 키운 소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소는 지방이 너무 많아서 육질은 연하지만 고기 양이 적어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좋은 소 같아서 사왔다가 새김질한 뒤 낭패를 본 경우가 몇 번 있습니다.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요새 너도나도 한우 브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횡성한우’는 안 들어본 분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한우 브랜드가 최근 많이 생겼습니다. 질 좋은 한우를 알리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저는 결국 중요한 건 어느 지역인지보다 얼마나 정성 들여 소를 길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은 얼마나 정성 들여 소를 길렀느냐입니다. ‘○○한우’ 뭐 이런 식으로 브랜드만 만들어놓고 품질 관리를 안 한다고 칩시다. 분명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한우는 결과 수직으로 잘라야 맛있어

저는 이번이 난생처음 해보는 인터뷰입니다. 마장동에 직접 오는 기자에게 뭘 대접해야 할지 몰라 작업봉에 걸린 4분도체에서 살칫살(소 등심에 있는 삼각형 모양 특수부위)과 차돌박이(소의 양지머리뼈의 한복판에 붙은 기름진 고기)를 새김칼로 잘라내 업장에서 구워 먹었습니다. 한우는 부위별로 어떻게 써느냐에 따라 심지어 맛까지 달라집니다. 결과 수직으로 잘라야 육질이 맛있습니다. 결대로 자르면 지나치게 연해져서 외려 맛이 없다는 걸 알아두시길.

김지삼 부영축산 대표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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