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난화와 메를로의 운명.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요리 냠냠사전
메를로〔명사〕검은 체리 같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의 포도주 품종. 붉은 살 생선이나 양고기와 잘 어울린다. 주로 타닌(포도주에서 떫은맛이 나게 하는 성분)의 풍미가 강한 카베르네 소비뇽과 섞는다.
⊙ 예문 → ‘50년 뒤에는 핀란드에서도 메를로를 재배한다.’ 프랑스 농학연구소(INRA)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핀란드에 포도 재배 지역이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초보 와인 애호가라면 한번쯤 만화 <신의 물방울>을 언급하며 “프랑스 샤토 ○○의 바디감(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용어)이 묵직하군!”이라고 소믈리에를 흉내 내 봤을 게다. 좀더 젠체하는 사람은 그랑크뤼(프랑스 메도크 지역의 최고 등급 와인) 61개 샤토(와인 제조장) 이름을 달달 외운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뒤엔 이런 ‘암송’이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와인 전문가 로버트 조셉은 지난 4일 영국 <가디언>을 통해 “50년 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은 1.2도 상승하고 이탈리아 키안티 지역은 2도나 상승할 것”이라고 연구결과를 인용해 주장했다.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회 ‘지구 온난화와 와인’ 국제회의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쏟아졌다. 로버트 조셉의 설명을 종합하면, 50년 뒤 보르도는 현재의 북아프리카에 가까워진다. 이 때문에 포도의 당도가 높아져 알코올 도수는 높아지고, 대신 타닌 함량이 낮아져 현재의 명품 와인들이 갖고 있는 복잡한 풍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보르도 ‘샤토 라 루비에르’는 온난화 때문에 현재의 메를로 대신 열에 강한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프티 베르도로 작물을 대체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탈리아 바롤로, 스페인의 리오하·라만차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 때문에 와인 제조업자들은 좀더 추운 지역을 물색하고 있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이미 남미 포도 재배농장에 투자 중이다. 세계 7위 와인 생산국인 중국의 베이징 주변도 대안 지역으로 언급된다. 와인 소비자들이 할 일은? 가격·지역에 관한 기존의 선입견을 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즐길 것!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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