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끓여주신 퐁퐁라면 맛을 잊기 어렵다.
[매거진 esc]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삶은 라면’의 추억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저의 열두 살 생일 이야기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빠는 무척이나 가정적인 분이었습니다. 스마일맨! 우리 삼남매가 부르는 아빠의 별명이었죠.
어느 날, 스마일맨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아빠는 실업자가 되신 겁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일맨의 입가엔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가 웃긴 했던 거 같습니다. 열두 살이던 제가 알아차릴 만큼 어색하게 ….
그리고 어느새 기다리고 기다리던 열두 살 생일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평소보다 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죠. “우리 왕자님~ 스마일맨이 무슨 선물을 줄까?” 난, 로보트 태권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옆에 있던 형이 옆구리를 툭 치며 절 매섭게 노려보았죠.
“라면 끓여 주세요!” 형이 말했습니다. “아빠가 끓여 주신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거든요. 그치?” 누나가 말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아버진 정말 환하게 웃었습니다. 스마일맨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라면을 끓였습니다. 파도 송송! 계란도 탁탁! 아빠는 비장의 무기라며 찬장 깊숙한 곳에서 뿌연 갈색 빛깔의 유리병을 꺼내며 냄비에 따라 넣으셨죠. “참기름도 듬뿍!! 엄마한텐 비밀~.”
드디어 스마일맨이 큰 냄비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밥상 위에 냄비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 삼남매는 일제히 젓가락을 들었습니다. 하얀 김이 걷히자 꼬들꼬들한 라면, 싱싱한 파가 보이고 라면 아래 숨겨져 있는 달걀의 흰 살과 노란 살이 보였죠. 잽싸게 달걀을 향해 젓가락을 날렸지만 달걀은 형의 젓가락에 들려 있었습니다.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야하~ 역시 장남인데, 막내한테 주려는 거지?” 말씀하시자 자신의 입으로 달걀을 집어넣으려고 하던 형은 “생일 축하해 종해야!” 하며 내 입에 넣어 줬죠. 우리 삼남매는 사이좋게, 아니 살벌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빠가 웃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녀석들아 면만 먹지 말고 국물 좀 먹어! 라면은 국물 맛으로 먹는 거야.”
혀 데는 것쯤 상관없었죠. 내가 제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형이 입안에 들어 있던 국물을 방바닥 위에 뱉었습니다. 누나 또한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국물을 뱉었습니다. 내 혀끝에도 갑자기 쓴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죠. 뱉으려 하는 순간 스마일맨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죠. “왜? 뜨거워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맛없어?” 아빠의 아들답게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아냐 맛있어!” 꿀꺽 삼켰습니다.
하지만 형과 누나가 아빠를 원망하며 따지듯 하는 말. “아빠, 여기다 뭘 집어넣은 거야?” “너무 써!” “뱃속이 이상한 거 같아.” “라면이 상한 거 아냐?”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럴 리가 없다며 라면 국물을 한입 가득 넣으셨습니다. 굳어진 아빠의 얼굴. 아빠는 뭔가 생각난 듯 부엌 찬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참기름 병을 꺼내 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으시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죠. 그러곤 냄비 안을 젓가락으로 휘휘 젓기 시작하시는데 뽀글뽀글 거품이 나기 시작했죠. 비눗방울들이 면발 사이로 올라오는 걸 보며 어색하게 웃던 아빠는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에 돌아온 엄마에게 진실을 들을 수 있었죠. 엄마는 쓰다 남은 퐁퐁을 빈 참기름 병에다가 담아뒀고, 아빠는 라면을 더 맛있게 끊이기 위해 퐁퐁을 참기름으로 오해하고 라면에 넣은 것이었지요.
1년 뒤, 아빠는 다행히 취업을 하셨고 어색 스마일맨은 다시 웃음 활짝 스마일맨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아빠한테 퐁퐁라면 끓여 달라고 했고 아빠는 해맑게 웃으시며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을 끓여 주셨죠.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이나 술 먹은 날엔 아빠의 퐁퐁라면이 간절해집니다. “스마일 맨! 퐁퐁라면 부탁해요!”
김종해/인천시 계양구 작전1동
김종해/인천시 계양구 작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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