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오은의 오손도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나는 손의 의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나는 손의 의미
타인에게 내미는 손이 때로 진한 우정을 만들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내미는 것은
두 사람이 있어야 완성된다
나와 다른 이, 또는
여기의 나와 거기의 나 너는 내민다
백동으로 만든 동전 한 닢을 위해
너는 내민다
단팥으로 꽉 차 있을 찐빵 한 개를 위해 너는 내밀며 받고
너는 내밀며 준다 ─오은, ‘손’(<유에서 유>, 문학과지성사, 2016) 중에서 “너는 참 손이 예쁘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펴고 있던 손을 무의식적으로 오므리고 말았다. 친구가 놀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네? 근데 혹시 목마르지 않아?” 나는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화제를 전환하려고 애썼다. 당황해서 그런지 목이 마른 것도 같았다. 어느새 두 손은 뒤춤에 가 있었다. 쥐고 있던 손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물컵을 잡으려면 손바닥을 펼 수밖에 없어서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잽싸게 등을 돌렸다. 물이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친구는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어렸을 때부터 못생긴 손은 내 콤플렉스였다. 정확히 말하면 손톱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타원형이라기보다는 사각형이나 오각형에 가까운 손톱 때문에 사람들에게 손등보다는 손바닥을 보이는 일이 많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걷거나 기온과 상관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건조해지면 어김없이 손톱 주위에 거스러미가 일었다. 언젠가부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이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거스러미를 뜯어낸 자리에는 상처가 나기 일쑤여서 손은 종종 더 부끄러워졌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쳤다. 어떤 버릇은 ‘버릇없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물어뜯을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손톱을 아예 바짝 깎았다. 그러나 여전히 손을 펴고 있을 때보다는 쥐고 있을 때가 많았다. 마치 손안에 비밀이라도 감춰둔 것처럼, 오므려 쥔 손을 여간해선 풀지 않았다. 온종일 긴장을 하고 있던 손가락들은 샤워를 하거나 잠자리에 누울 때쯤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왜 자유롭게 쓰고 만지고 쓰다듬지 못하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가만히 볼에 대고 잠이 들었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밤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어둠에 발을 헛디뎠는지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둠 속이라 내 못생긴 손이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손은 부끄러울 겨를이 없었다. 굴러 떨어질 뻔했던 사람이 내 손을 붙잡은 채 계단 디딤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정말 고마워요.” 한참 만에 일어난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나는 가만히 손을 펴보았다. 내밀었던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 손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내 손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을 구한 손으로라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손으로 틈틈이 글을 짓고 밥도 지어 먹었다. 손을 좋아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손을 쥐는 때보다 펴는 때가 많아졌다. 손을 펴지 않으면 그것을 내밀 기회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꽉 쥔 채 내미는 손은 누군가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내미는 것이라기보다 휘두르는 것에 더 가깝다. 글을 쓰는 것도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그 손이 모든 이에게 가닿지는 못할지라도 어떤 이는 그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일어난 힘으로 다른 어떤 이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으레 악수를 한다. 상대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알린다. 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오랜만에 만나면 악수를 한다. 악수는 본디 손(手)을 잡는다(握)는 뜻이지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손을 내밀며 안부를 전하는 것이다. 손을 내밀며 자발적으로 따뜻해지는 것이다. 함께 따뜻해지자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내밀 때 상대에게 가닿으려는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난다. 사람은 그렇게 비로소 ‘인간’(人間)이 된다. 손을 내미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여유롭거나 절박하거나. 너그럽고 넉넉한 사람은 약자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민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도 별수 없이 손을 내민다. 빈손만큼 간절한 것은 없으므로, 내민 손을 외면할 때면 외면하는 사람의 가슴에는 보이지 않는 손자국이 남는다. 길을 걸어가다가 가슴에 가벼운 통증이 찾아올 때면 예전에 내가 외면했거나 뿌리쳤던 손들이 떠오른다. 지하철 역내에서 껌을 내밀던 할머니의 손, 사과하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내밀던 친구의 손, 한 번만 다시 생각해줄 수 없느냐고 매달리듯 내밀던 사랑하던 사람의 손…. 그 손들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면 내 손은 더없이 옹졸해진다. 손을 내민 사람들은 무안함이나 체념을 안고 묵묵히 뒤돌아섰을 것이다. 내민 손을 호주머니에 재빨리 쑤셔 넣었을 것이다. 불쑥 내민 손은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많지만, 헤아려보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에게 손을 다 내밀었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가 든다.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은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태롭기 때문이다.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은 자신이 감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경우다. 반면,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감히 내일을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절박한 때다. 두 눈을 비비다가 머리를 쥐어뜯다가 쿵쾅쿵쾅 가슴을 치던 손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바로 내미는 일이다. 손을 내미는 것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안간힘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손을 내미는 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온몸을 내던지는 일이다. 내민 손을 지나치지 않는 일, 내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는 일은 그래서 숭고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는 다름 아닌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곤 했다.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비밀을 힘겹게 고백하는 심정으로, 거울을 보며 난생처음 악수를 연습하는 마음가짐으로. 오른손을 내밀었고 왼손이 그것을 잡았다. 내미는 것은 두 사람이 있어야 완성되는 행위다. 나와 다른 사람, 혹은 여기 있는 나와 거기를 꿈꾸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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