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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시간은 ‘세월’이 될 수 없었다

등록 2017-03-29 20:09수정 2017-03-29 20:35

[ESC] 오은의 오손도손
참사 천일이 넘어서야 시작된 세월호 인양에 부쳐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해상에 침몰한 세월호가 사고 발생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해상에 침몰한 세월호가 사고 발생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속곳 깊숙이 감춰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원보다 더 많이 술만 마셨다”
-권대웅, ‘쓰봉 속 십만원’(<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 문학동네, 2003) 중에서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배가 가라앉았다.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였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서 사고(accident)가 사건(incident)이 되었고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그것은 다시 재난 혹은 재앙(disaster)의 국면을 맞게 되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손쓸 수 없는 상황을 다들 ‘라이브’로 지켜보며 가슴 졸였다. 수학여행을 가려고 세월호에 오른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부모님과 전화를 시도했다. 손가락을 꾹꾹 눌러 문자를 보내고 에스엔에스로 접선을 시도했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으려고 애썼다. 배가 점점 기울고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했지만 착하고 순진한 아이들은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 그때까지도 우리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가만히 있던 그 유순한 아이들이 곧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날이 바뀌었지만 실종자 숫자 외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온종일 티브이 앞에서 눈과 귀를 연 채 하루를 보냈다. 눈이 벌게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배는 이미 가라앉았는데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사고를 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테지만, 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는 결정적일 때 더없이 무능한 국가의 민낯을 목도했다. 사람들의 기대는 낙담이나 절망으로, 곧이어 분노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국가는, 실은 안전 후진국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손쓸 방도는 점점 없어졌다. 잡아달라고 내미는 손들을 결국 잡지 못했다.

손쓸 수 없는 고통,
손쓰지 않은 책임…
‘가라앉다’는 단어를
한동안 쓰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손발을 묶는 말이다. 어떤 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말이다. 정작 가만히 있었던 것은 정부였지만, 가만히 있다가 참사를 당한 것은 세월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당시 온 국민이 가장 간절하게 떠올린 단어는 아마도 “떠오르다”였을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가, 승선하고 있던 아이들이, 무엇보다 ‘희망’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두 손 놓고 있는 정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부가 야속하기만 했다. 왜 당장 손쓰지 않는지 물어도 정부는 엉성한 변명만 해댔다. 손써야 하는 게 절실할 때 비열하게 손을 떼버렸다. 그 비열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갖가지 거짓말과 루머가 등장했다. 그 거짓말과 루머 끄트머리에 항상 붙곤 하던 문장이 있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동의한다. 역설적으로, 산 사람이 살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잊을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그날을 떠올렸다.

한동안 나는 말과 글에서 “가라앉다”라는 단어를 쓰지 못했다. 손쓸 수 없는 단어, 감히 손 내밀 수 없는 단어, 발음할 때마다 손이 저리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천일이 넘게 흘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세월호 인양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침을 삼키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보인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부디’가 ‘마침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천일이 지나고 나서야 인양이 이루어지는 것에 무척 화가 나면서도 지금이라도 인양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간은 너무 촘촘하고 간절해서 ‘세월’이 될 수 없었다. 광장에서 손을 비비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 사람들이 있었다.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을 바라보며 기다리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손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때’라는 생각이 든다. 제때 손쓰지 않으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고나 사건이 터졌을 때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의 금쪽같은 시간을 가리켜 ‘골든타임’이라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가 골든타임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사태가 그토록 급박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제때 바로잡으려고 애썼다면, 사건이 재앙이 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손을 내미는 일, 손을 뻗는 일은, 손쓰는 일을 하는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해야 한다. 위기를 막아내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손쓰는 일은 그 시간이 아니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손쓰는 일은 절박함과 맞붙어 있다.

참사 당시 정부에서는 스스로가 컨트롤타워가 아니고, 그러므로 책임자도 없다고 당당히 말했었다. 공교롭게도 3년 후, 대통령이 파면되고 난 뒤에야 인양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 대통령이 내려오자 세월호가 올라올 수 있게 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과연 뒤늦게라도 손쓰는 일이 이뤄졌을까? 구조와 인양을 둘러싸고 못한 것이냐, 안 한 것이냐 하는 물음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얼마 전에 공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실에 지시한 내용을 보니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세월호 청문회와 관련해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증인, 참고인의 성향 분석, 예상 질문답변을 면밀히 준비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하는데, 사람의 목숨을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로 파악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제때 손쓰지 않은 책임을 어떻게든 지지 않겠다는 꿍꿍이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손쓸 수 있는데 쓰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2014년 4월16일부터 지금까지, 참사 앞에 다름 아닌 정치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사람들이 깔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묻는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위로’라는 역할은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 처음부터 대놓고 의도하지는 않았던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쓰면서 똑똑히 기억할 수 있다. 제때 손쓰지 못해 참사가 되어버린 사고에 대해. 그 순간, 대한민국 전역을 덮쳤던 감정에 대해, 사건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구조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 당국과 관련 부처에 대해, 불의(不意)에 불의(不義)가 개입하던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무엇보다 또 다른 재앙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생생한 불안감에 대해.

불의의 뿌리를 뽑는 일도, 진실을 들어올리는 일도 둘 다 아래에서 위를 향한 힘에서 비롯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터질 때마다 그것들은 각자의 말로, 우리의 말로 남을 것이다. 그 말을 받아 적는 손에 대해 생각한다.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지만, 받아 적는 사람의 마음은 늘 아래에서 위를 향할 것이다. 글을 쓰는 내게, 손쓰는 일은 곧 손으로 쓰는 일이다. 잊지 않는 일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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