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오은의 오손도손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모전자전 후한 인심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모전자전 후한 인심
이웃과 정을 나누는 김장문화. 박미향 기자
숟가락 같은 상현달도 걸어놓았구요
건건이 하라고 그 아래
봄동 배추도 무더기 무더기 자랐는데요
생전에 손이 커서 인정 많고
뭘 해도 푸지던 할머니가
일구시던 텃밭 귀퉁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막 한상 차려낸 듯한데요
쳐다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요
─송진권, ‘배부른 봄밤’(<자라는 돌>, 창비, 2011) 중에서 “너는 가만 보면 손이 참 커.” 아홉살 때 처음으로 손이 크다는 말을 들었다. 옆집 아주머니로부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을 쫙 폈다가 뒤집어 손등을 펼쳤다. 손이 먼저 부끄러움을 알았는지 어느새 벌게져 있었다. 내 손이 또래 아이들의 그것에 비해 큰가? 그때까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홉살에 손 크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그 말이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오후에 어디선가 전화를 받은 엄마가 황급히 외출을 했던 날이었다. “은아, 이따 옆집에서 아주머니가 올 거야. 엄마가 지금 급해서 그러는데, 찬장에서 적당한 통을 꺼내서 김치 좀 담아주렴.” 엄마의 부탁을 듣고 나는 “응!”이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아홉살짜리 아이에게 이런 중차대한 미션이 주어지다니, 나는 내가 어른이라도 된 것 같아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걱정 마, 나만 믿어.” 엄마는 씩 웃고 잰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아주머니가 오기 전까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인 셈이었다. 냉장고 하단에 있는 김치가 담긴 통을 꺼낸다, 찬장을 열고 김치를 옮겨 담을 통을 꺼낸다, 위생장갑을 낀다, 통을 열어 조심스럽게 김치를 꺼낸다, 신중함을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민첩하게 김치를 옮겨 담는다, 옮겨 담은 김치통을 보자기로 야무지게 싼다, 웃는 얼굴로 그것을 아주머니께 드린다.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나니 절로 용기가 생겼다. 해질 무렵까지도 아주머니가 오시지 않았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목적지에 가는 사람보다 목적지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이 애가 탄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도 했다. 이따 오신다고 그랬는데 ‘이따’는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지칭하는 걸까. 아주머니보다 엄마가 먼저 오면 미션을 수행하기로 한 나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길 것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적당한 통을 꺼내서 김치를 담아야 하는데 도대체 ‘적당한’ 통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 걸까. 아주머니가 올 때까지 나는 적당한 통을 고르기로 했다. 찬장을 여니 빈 통들이 크기별로 모양별로 놓여 있었다. 중간 크기인 저걸로 할까? 저건 너무 작지 않을까? 옆집에는 아주머니를 포함해서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저 통에 김치를 담으면 다섯 식구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까? 원기둥 모양의 저 통은 김치를 담기에 적당할까? 적당한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적당하다는 것은 정도에 알맞다는 뜻일 텐데, 빈 통은 너무 많았고 적당함이라는 말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나는 찬장에서 두 번째로 큰 직육면체 통을 꺼내놓았다. 내친김에 위생장갑을 끼고 김치를 옮겨 담기까지 했다. 이제 아주머니만 오시면 된다. 언제나 세 번 김장하는 엄마
받는 이마다 “뭘 이렇게 많이”
어느새 나도 닮아 커진 손
넉넉하고 넓어지는 마음 다행히 아주머니가 엄마보다 먼저 오셨다. 나는 미리 싸둔 김치를 아주머니께 드렸다. 아홉살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호기로운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통을 건네받은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너는 가만 보면 손이 참 커.” 때마침 엄마가 돌아왔다. “김치가 맛있어서 한두 쪽만 가져가려고 했는데, 은이가 아주 통김치를 주네요. 아무래도 엄마 닮아서 손이 큰가 봐요.”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엄마가 크게 웃었다. “농담 아니고 정말 한 세 포기는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 먹겠어요.” 저녁 시간, 다섯 식구가 사는 옆집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건넨 김치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그 뒤로 손이 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문병을 가는 길에 친구가 사과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나 과일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몇 개를 사야 할까 고민하다 한 상자를 샀다. 병실에 있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가 있는 병실은 4인실이었는데 그마저도 침대 두 개는 비어 있었다. “나 다음 주에 퇴원하는데 이렇게 많이 사 오면 어떡해. 너 진짜 손 크다.” 친구는 사과를 보며 반색하면서도 혀를 내두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분들과 사과를 사이좋게 나누었다. 양손에 사과를 하나씩 쥔 채 병실을 나서는 간호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것 봐. 넉넉하게 사 오니까 얼마나 좋아. 나눌 수도 있고.” 내 말에 친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빙긋 웃었다. 손이 크다는 것은 정이 많다는 말이다. 당신에게 베풀 마음이 있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넉넉해지겠다는 말이다.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아니 당신과 나는 이 정도로 가깝다고 알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낫다는 후덕함과 더불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낫다는 푸짐함이 한데 모일 때 비로소 손은 커진다. 마침내 마음은 열린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있다. 주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겨를이 없다. 더 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한번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밥을 해준 적이 있었다. “아까 간식을 먹었더니 식욕이 별로 없다. 난 밥 조금만 줘.” 멀리서 친구가 왔는데 어떻게 밥을 조금만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고봉밥까지는 아니더라도 밥을 넉넉하게 펐다. “조금만 달랬잖아!” 밥그릇을 받은 친구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이 상황은 어릴 적 나와 엄마 사이에 종종 벌어지곤 하던 촌극과 똑같았다. 겸연쩍어져서 그만 멋쩍게 웃고 말았다. 엄마를 닮아서 손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이 크다는 게 늘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버리는 때가 생겨났다. 가족들끼리 먹으려고 큰맘 먹고 만든 잡채는 날씨 때문에 금방 쉬어버렸다.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쉰 잡채를 넣을 때 지나치게 큰 손이 조금 원망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떠먹는 요구르트를 잔뜩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유통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받는 입장에서도 손이 큰 것이 매번 좋게 평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번은 호감 가는 이성에게 열 권 넘게 책들을 선물했다가 과한 친절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다. 생일에 가까운 이들을 뷔페에 초대했다가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머쓱해진 적도 있었다. 엄마는 작년에도 어김없이 김장을 세 번 했다. 첫 번째 김장은 엄마와 가까운 이들에게 주기 위해, 두 번째 김장은 가족이 많거나 혼자 사는 시인들에게 주기 위해, 세 번째 김장은 우리 가족이 내년에 먹기 위해. 엄마는 담근 김치를 일일이 포장을 해서 전국 각지로 직접 보냈다. 그 수고로운 일을 정말 기쁘게 했다. 김치를 받은 시인들마다 놀라서 내게 전화를 해 왔다. “무슨 김치를 이렇게 많이 보내셨다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는다니.” 엄마는 김치를 맛있게 먹어주는 게 그것을 갚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손이 큰 사람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아니, 큰 손을 잘 쓰면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리라.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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