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오은의 오손도손
‘손댈수록 무거워지는 트렁크’를 들고 가는 이들에게
‘손댈수록 무거워지는 트렁크’를 들고 가는 이들에게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스스로 말하는 법 없는 진실은
현란한 거짓말의 진창에 가려져
우리가 손을 뻗어야만 드러난다 다 쓴 장편소설에 손을 대기로 마음먹은 사람도 비장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커다란 줄거리에 손을 대버리면 이야기 전체가 기우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고 뭉치만 쌓아놓고 차마 손대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하면 수정할 부분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테니 말이다. 이때의 “손대다”는 고치거나 매만지는 행위를 일컫는다. 고치거나 매만지는 일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겠는가. 시작하기가 막막하고 끝내기가 저어되는 것이 바로 손대는 일이다. 작년 봄, 세 번째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몇 개월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원고에 손대기 싫어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고에 손대는 것이 무서워서 나는 자꾸 핑계를 만들고 도망 다녔다. 회사 일이 많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의 약속을 거절할 수 없어서 원고에 손대는 일을 당장 오늘 할 수는 없었다. 손끝 하나 까딱 안 했는데도 오늘은 어제가 되고 금세 그제가 되었다. 아무리 손을 대도 티가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손대는 일에는 용기뿐만 아니라 꾸준함과 끈질김 역시 필요했던 것이다. 손대는 일이 유혹과 만나면 치명적인 상황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예컨대 남의 재물을 불법으로 가지거나 쓸 때도 손댄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형제자매의 저금통에 손대던 사람이 남의 지갑에 손대고 돈에 눈이 멀어 결국 공금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손대는 일을 할 때마다 손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대상을 향한 욕망만 갈수록 커지는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손을 잘못 대면 나쁜 일에 휘말리게 되기 십상이다. 도박에 손대거나 부동산 투기에 손대 크나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온갖 부정(不正)한 일에 개입되어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손댔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경우에 우리는 좌절한다.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붓글씨를 쓰고 먹물이 다 말랐는지 손을 댔다가 화선지 전체가 얼룩진 적이 있었다. 아무리 다시 써도 그때의 그 글씨를 쓸 수는 없었다. 한번은 바늘 끝에 손을 잘못 댔다가 피가 난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피는 멎었지만, 바늘에 찔려 피가 나오던 순간은 두고두고 기억났다. 펀드에 손을 대 손해를 봤을 때에는 잃은 돈에 대한 미련보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내가 쓴 시에 덜컥 손을 댔다가 애초에 쓰려고 했던 시가 전혀 새로운 시가 된 경우도 있었다. 뜻하지 않게 동문서답을 해버린 당사자가 된 것 같았다. 손댄 것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때도 있다. 거짓말에 ‘손을 대면’ 그것이 거짓말처럼 부풀어 올랐다. “손대면 손댈수록 무거워지는 트렁크를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진실은 왜소해졌다. 정치인들의 청문회를 보며,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다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불러들였다. 또 다른 거짓말은 처음의 거짓말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거짓말에 손대면 으레 두려움이 커지게 마련일 텐데, 거짓말을 하는 자는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온몸이, 온 생애가 통째로 거짓말 같았다. 그 어디에서도 진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실에 ‘손대는 일’은 어렵다. 진실은 스스로 말하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란한 거짓말 아래에 가려져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거짓말로 가득 찬 진창에서 진실에 손대기 위해 우리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진실은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거짓말에 손대면 두려움이 커지지만, 진실에 손대면 책임감이 커진다. 진실이 정의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말했듯, 일단 한번 손대면 손대기 전으로 돌아올 수 없다. 이는 손대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손대는 데에는 그만큼 강단(剛斷)이 요구된다는 말도 된다. 지난 10일,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손은 한곳을 향해 있었다. “손대다”의 마지막 뜻은 “가까이 다가가다”이다. 우리는 정의를 찾기 위해 기꺼이 진실에 손댔다. 그리고 승리했다. 이제 거짓말의 장막이 걷힐 차례다. 오은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