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러운 치통 때문에 덜컥 겁을 먹은 채로 치과에 갔다. 입속을 들여다본 의사의 말로는 치아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단다. 골고루 실금이 많이 가 있다며 “이를 자주 꽉 깨물고 계신가 봐요?”란다. 한 번도 인식해본 적 없던 일이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치과를 나섰다. 그날 이후, 발견의 연속이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가, 팟캐스트를 듣다가, 심지어 잠결에도 화들짝 놀란다. 내가 이를 꽉 물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다. 그럴 때마다 위아랫니를 떼어내고 혀를 입천장 쪽에 살짝 가져다댄다. 그제야 몸에도 꽉 들어차 있던 힘이 좀 내려가는 것 같다.
폐가구를 분해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 목공방 ‘문화로놀이짱’의 아랑은 손작업이 ‘몸에 힘을 빼는 경험으로 가는 통로’라는 점에서 기쁨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오롯이 손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지고 자기 신체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감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늘 몸을 짓눌러 실감조차 못하던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과 통한다. 아랑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들다보면, 합이 딱 맞으면서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손이 척척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면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손작업에 빠져드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손을 직접 움직여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이 경제적으로 의미가 있기는 쉽지 않다. 쓸 만한 물건을 만들기까지의 숙련 과정은 지난하고, 훈련 끝에 제법 괜찮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더라도 ‘다이소’나 ‘이케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허탈함이 물밀듯 밀려온다. 들인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절대 계속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손을 움직여 제작하는 이들에게 손작업의 기쁨은 물건의 효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손의 움직임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지면서 그제야 손과 내 정신이, 몸과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나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온전한 기쁨의 순간이다. 아랑은 평소의 일상에서도 몸에 힘을 빼는 순간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몸에 힘을 빼는 데 익숙해지면 많은 일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긴장한 채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엔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책도 나왔다. 표지에는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해진다”고 적혔다. 더구나 힘을 빼면 치아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제현주(일상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